▣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78- 휴머니즘과 자유의지

영광도서 0 439

휴머니즘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자유의지라고밖에 할 수 없다. 때문에 휴머니즘은 자유의지다.

 

휴머니즘, 말 그대로 휴먼은 인간 그 자체를 말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피상적인 인간을 말하기보다 피상적인 존재의 몸을 움직이는 그 무엇을 말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말을 지배하고, 몸을 지배하는 나, 생각을 지배하는 나를 말한다.

 

이 나는 때로 나를 그 무엇에 반항하게도 만들고 그 무엇에 순종하거나 복종하게도 만든다. 이처럼 무엇에 반항하거나 순종하거나 복종하는 존재를 인간 곧 휴먼이라 한다. 이처럼 무엇을 선택할 줄 아는 존재라야 휴먼이다.

 

때문에 휴먼은 곧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를 이른다. 자유의지는 선한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소위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때로는 추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때로는 나보다 강한 존재에 굴종할 수도 있지만 반항할 수도 있다. 오직 하나의 방법만 갖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법을 놓고 그 중에 무엇을 고를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는 곧 선택은 하나의 방법, 오직 하나로만 통하는 것을 의미함이 아니라 여럿 중에서 고름을 의미한다. 때문에 인간은 다시 선택하는 존재라는 의미와 갈등하는 존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면 인간의 정의는 한없이 많다. 다만 이를 줄여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이러한 자유의지란 추상은 맥락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를 알려면 인간은 다른 존재와 비교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야 얼추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는 인간에게 복종하는 법만 배웠지, 반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라고 한다면, 늑대는 인간을 경계하되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같은 개과이지만 늑대와 개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개는 인간에게 길들여져 있고, 늑대는 본성 그자체로 산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란 지배하려는 존재에게 하나는 순종할 뿐이고, 하나는 반항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늑대와도 다르고 개와도 다르다. 상위자인 인간에게 늑대처럼 오직 반항만 하는 본성적 존재만이 아니고, 개처럼 길들여진 순종적 존재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늑대처럼 본성대로 살 수도 있고, 개처럼 길들여져 살 수도 있다. 때문에 인간은 상위자인 신에게 반항할 줄 아는 존재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 자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신앙적 존재임과 동시에, 그렇게 설정한 존재에게 오히려 반항할 줄도 아는 존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처럼 인간이 지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려면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신에게 순종하거가 반항할 줄 아는 존재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존재를 인간이라 한다. 따라서 자유의지란 선택적 존재를 말함이지 무조건 반항적 존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하기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존재이다.

 

갈등과 고민이 힘겹다면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그런 존재는 주인으로 설정한 신의 뜻만 따르면 그만이다.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존재,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존재, 이는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이며, 신에게 오직 순종적 존재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산다거나 신의 섭리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살아가는, 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존재에겐 인간이란 이름 휴먼이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상을 신본주의라 했으니, 이를 극복한 사상이 휴머니즘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이란 신을 부정하는 주의가 아니라 신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의 섭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섭리를 거부할 수도 있고, 반항할 수도 있으며, 그 선택할 의지가 있는 존재를 말한다. 그 결과가 불행일지라도 비극일지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선택하기를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고로 인간은 불행을 선택할 수도 있고 행복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을 신의 섭리로, 자연의 이치로 살아가려 않는다. 결과가 불행이든 비극이든, 다행이든 희극이든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삶의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고, 그 과정을 내 의지대로 살며, 그 결과 또한 후회하든 안 하든 그것만이 소중하다. 고로 나는 인간이다.

 

나는 지금 글을 쓴다. 신이 나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내가 쓰고 싶어 쓴다. 신이 쓰지 말라고 해도 나는 쓴다. 이것 또한 나의 선택이다. 잠을 더 자는 대신 글을 쓴다. 고로 나는 인간이다. 달리 말하면 휴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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