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80- 아버지의 자격

영광도서 0 470

아무런 자격증을 받은 적은 없어도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으면 아버지다. 아버지란 부름에 익숙해지면서 삶의 무게와 등에 업힌 식솔들의 무게를 버틴다. 자격이 있든 없든, 능력이 있든 없든 아이들의 아버지이다. 어느 누구도 아버지라는 이름을 다독여주지 않는다. 그저 제 삶의 짐에다 점점 진하게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를 얹어가면서 아버지라는 고독한 책임을 짊어지고 외롭게 아버지의 길을 간다.  

 

밖에서 생활할 때는 때로 아버지라는 걸 잊고 아버지답게 생활하지 못하여도, 집에 돌아오면 ‘아빠’라는 부름과 함께 아버지의 자리에 앉는다. 소박한 아버지의 위치로 돌아와 사회에 시달리며 잃었던 아버지의 품위를 되찾는다. 아버지로 살려면 적당한 위선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허풍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아버지로 서려는 위선, 아버지답게 어깨를 으쓱하는 허풍을 배운다. 거짓이건 위선이건 신도 이해하고, 아이들도, 아내도 그런 것쯤은 적당히 눈감아주겠지, 그 마음으로 아버지를 배워간다. 그렇게 아버지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 어린 것들,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무기력한 강아지들, 그들을 위해 제 자존심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때로는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뺨을 맞는 일도 기꺼이 참아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한 수치, 더한 괴로움도 참을 수 있다. 그럼에도 넉넉히 웃을 수 있다.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수치스러워도 아버지는 웃는다.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수치를 당하면서도 싱긋 웃으며 괜찮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저들의 고운 눈동자 속에 희망을 심고, 저들의 맑은 꿈속에 모두를 담는다. 

 

아버지의 인내 뒤에는 맑은 눈동자들이 웃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희망이요 꿈이며, 비전이다. 괜찮은 아버지가 되려는 아버지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거느린 식솔들을 재대로 먹여 살린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안간힘을 낸다. 적어도 가족들에게만은 인정받고 싶은 생각에 우리 아버지들은 외부의 수모를 참고 견디면서,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설움을 참아내며 갈수록 버거운 짐을 버틴다. 

 

아버지로 산다는 건 녹녹치 않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권리는 줄어들고, 짐만 무거움을 절감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자식들 눈치를 보아야 하고 때로 아내의 곁이 두려운 게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는다. 얼마나 돈을 벌어오느냐가 자녀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아버지로 인정받는 가치라면 서글프다. 그렇게 때로 아버지란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가치를 부여받는 직업이라 생각하면 살 맛 안 나고 먹먹함으로 눈물짓는다. 

 

요즘 같은 때면 더 버겁긴 하지만 여린 새싹들의 희망을 생성시키고, 고운 꿈을 맘껏 펼칠 맑은 눈동자들을 기쁘게 상상하며 나는 집으로 간다. 아버지가 간다. 오늘도 세상에서 떠나서 아버지는 가정의 가운데 자리를 메우러 간다. 생활인으로서의 비루한 옷을 벗어두고 그럴듯한 아버지의 옷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간다. 아버지가 되러 간다.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님에도,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정이라는 십자가를 덧붙여 짊어지려고 아버지의 자리로 간다.  

 

밖에서 어떻게 살아내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가장 듬직한 기둥으로 받치고 선다.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고,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아버지로 선다.  그 이면에는 많은 눈물과 고독과 설움을 감추고 아버지다우려 참아낸다.  그럼에도 결코 아버지는 고독하지 않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초롱초롱한 미래의 꿈이 자라고 있기에, 그저 괴롭고 힘들다가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그 한마디면 아버지로서의 고독과 외로움도 눈 녹듯 사그라진다. 하여 고독한 아버지는 든든한 한 가정의 기둥으로 선다. 

 

마음껏 울 수 없는 아버지는, 엄살을 부릴 수도 없는 아버지는, 모두 잠든 텅 빈 거실에서 암담한 미래를 슬퍼하며 세상에서 가장 쓴 담배 한 개비로, 또는 허공을 향해 내뱉는 세상에서 가장 긴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낸다. 그렇게 지친 아버지는 속앓이를 하며 든든한 가정의 기둥으로 산다. 

 

-내 삶의 그리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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