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81- 인간이 개보다 나은 이유

영광도서 0 442

욕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개일 것이다. 개라는 말에 다른 말을 붙이면 거의 욕이다. 물론 때로 친구끼리 애정을 나타내는 욕으로 쓰기도 하지만 개란 말을 앞세우면 안 좋은 표현으로 인식한다. 멀쩡한 사람한테도 개를 붙이면 무척 화를 낸다.

 

왜 하필 개일까? 개가 그렇게 못된 짐승일까? 그렇게 개 소리를 듣기 싫어하면서도 개는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이다. 개와 동거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요즘은 개를 동물로 치지도 않는다. 적어도 집에서 기르는 개, 거실이나 안방에서 기르는 개는 짐승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개는 더 이상 천대받는 짐승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자식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기도 한다. 스스로 개를 아들이나 딸로 삼아 엄마니 이모니, 아빠니 형이니 그렇게 부른다. 개를 자식 이상은 아니라도 자식처럼 받아들인다. 그만큼 개는 상황에 따라 인간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막상 말에 개를 앞세우면 싫어한다.

 

개와 인간을 비교하면 물론 인간보다 나은 면이 많다. 인간은 인간을 서로 배반하더라도 개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속여도 개는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은 진실하지 못하나 개는 절대적으로 진실하다. 도무지 속일 줄 모른다. 이런 성정으로 보면 개는 인간보다 훨씬 낫다.

 

그럼에도 왜 개를 안 좋은 표현으로 이해할까? 이는 개는 진실하기 때문이다. 개를 자유롭게 놓아기르면 개는 기분 내키는 대로 숨김없이 생활한다. 거리에서 교미를 한다. 거리에서 아무것이나 먹는다. 어느 정도 자라면 부모자식 개념도 없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이를 근거로 개를 안 좋게 인식한다. 따지고 보면 개는 타고난 성정은 사람보다 훌륭하나 자연대로, 곧 본성대로 사는 존재라는 점에서 욕을 먹는다.

 

반면 인간의 성정은 어떤 면에서 개보다 못한 점이 훨씬 많다. 물론 그런 단면적인 것만으로 인간을 평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인간은 본성만을 언급한다 해도 개보다 못한 면도 있지만 개보다 나은 면도 얼마든 있다. 개는 적어도 공동체를 위한 선을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타자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지는 못한다. 그만큼 인간은 아주 다양한 성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개와 인간을 단면적으로 비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개보다 나은 점도 있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개보다 못한 면이 많은 존재이다.

 

구체적으로 욕하지 않으면 개를 앞세운 욕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너는 개보다 나으냐?”라고 묻는다면, “네가 개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는 나는 개보다 못하다. 개만큼만 산다면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충성스러운가. 오히려 개처럼만 살아라 한들 욕이나 될까 싶다.

 

일반적으로 개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일면에는 개처럼 아무데서나 교미를 하지 않는다. 짐승은 교미이지만 인간은 성행위인데, 성행위를 거리에서나, 남이 보는 데서 하지 않는다는 점이 개보다 낫다고 인간은 생각한다. 이를 근거로 개를 안 좋게 여긴다. 하지만 다만 숨어서는 그 이상의 잡다한 성행위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개보다 나은 점은 진실을 감출 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한다, 남을 배려한다, 이런 점만이 개보다 나은 점이다.

 

반면 이를 진실의 문제로 따지면 인간은 진실한 면에서는 개보다 못하다. 고로 가면을 쓴 존재, 거짓을 드러내는 존재, 진실을 감춘 존재, 타인을 의식하는 존재인 인간은 짐승보다 이런 점에서 나을 뿐이다. 진실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소위 위선인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개보다 인간이 나은 점은 바로 위선자이며, 위선 덕분에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여타의 다른 생명체에 비해 열등한 조건으로 태어났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각자의 자유의지를 갖되, 공동체를 위해서는 따로 자유의지를 접을 수 있다, 협력할 수 있다, 가면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홀로이면서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짐으로써 개보다 나은 존재이다.

 

나는 인간이다. 가면을 쓴다. 안 그런 척한다. 싫어도 좋은 척한다. 마음에 안 들어도 마음에 든다고 한다. 즐겁지 않으면서도 즐겁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진실을 왜곡한다. 비록 위선으로 산다고 해도, 진실을 감추고 산다고 해도 나는 개보다는 인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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