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82- 자연스러움과 인간다움 또는 자연과 본성
영어의 nature는 우선 자연이란 의미로 읽는다. 또한 본성이란 뜻도 함께 지닌 단어다. 같은 스펠링을 가지고 있다면 의미 또한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자연이란 인간이 손을 대거나 변화를 시킨, 인위적인 또는 인공적이 아닌 본래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때문에 자연에서 나온 ‘자연스럽다’는 뜻은 작위적이지 않은 본래대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행동, 모양 또는 그러한 성질을 이른다.
예를 들면 물의 본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 둑을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우고 나서 다시 아래로 흐른다. 폭포는 그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폭포는 곧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반면 같은 물로서 폭포처럼 낙하하는 분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꾸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게 만든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바꾸어도 분수 역시 결국엔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으니 본성은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변하지 않는 본래의 성질을 언제든 유지한다는 점에서 본성과 같은 본의를 지닌다.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란 명제 또한 자연으로 번역한 단어 역시 nature로, 단순히 산과 물이나 나무 등의 자연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본성을 이른다. 인간이 가진 고유의 성질로서의 본성이다. 달리 말하면 아무런 법도, 관습도, 금기도 그 무엇도 없는 조건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또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성질이 본성이다. 인간은 분명 이런 본성을 지니고 있으나 현실에선 본성대로 살지 못한다.
인간은 본성대로 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여타의 동물들 중 적어도 가축이 아닌 존재들은 본성대로 살아간다. 반면 가축들은 어느 정도 인간에게 길들여 산다. 가축은 사람의 보호를 받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반면 야생의 동물은 양육강식의 자연에서 긴장의 연속을 버텨야한다. 이때 가축이 행복한지, 야생의 동물이 행복한지를 묻는다면, 혹자는 두려워도 야생의 동물이 낫다할 것이고, 혹자는 보호를 받는 가축이 낫다할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동물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자연과 인공의 관계는 자연은 본래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자연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인공인데 반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동물은 본래 태어난 성질대로 산다면, 인간은 본래 태어난 대로 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스스로거나 타율적으로 본성을 죽이고 살아간다. 때문에 동물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으로 나뉜다. 이런 점에서 있는 그대로란 또는 본시 타고난 대로란 점에서 자연과 본성은 같은 의미로 만난다.
나는 인간이다. 때문에 내 의지대로만 살지 않는다. 나의 존재의미와 타인의 존재의미를 함께 고려하여, 때로는 내 본성대로 살지만 그보다는 타인의 불편을 고려하여 본성을 억제한다. 나는 좋으나 타인에게 해가 된다면, 나도 좋지 않고 타인에게 해가 된다면, 나는 본성을 억제한다. 반면 나도 좋고 타인도 좋다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본성대로 산다. 나에겐 해롭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를 희생한다. 이것만이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