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89- 평생학습의 진정한 스승

영광도서 0 548

공자는 말하길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중에 내 스승이 있다. 착한 사람을 가려 그 행동을 따르고 악한사람을 가려 내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배움의 장으로만 여기면 어디서든 스승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는 뜻일 게다. 좋은 스승은 어디서든 만난다. 다만 배우려는 자세, 겸허한 마음이 요건일 뿐이다.

 

지난 추석 날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추석이 와도 딱히 일가친척이 모이지 않으니 특별히 정하고 갈 곳이 없다. 대신 처가에선 아침은 각 가정에서 해결하고 점심엔 형제자매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한다.

 

마침 처가가 남한산성에서 가까운 곳이라, 그에 맞춰 계획을 잡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우선 오전에 남한산성 한 바퀴 돌고 처가에는 점심에 맞춰 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대중교통으로 마천역에서 하차, 그곳에서 걷기 시작했다. 전에 다닌 곳이 아닌 좌측코스로 길을 잡았다. 오르다 우연히 큰 빈 물병을 짊어진 노인과 조우했다. 약수터를 지났는데 여전히 앞서서 따라왔다. 궁금해서 위에도 약수터가 있나 물었다. 노인이 대답하길, 일단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물을 떠갈 것이라고 했다. 매일 하루도 어김없이 운동 삼아 나온다 했다.

 

‘대단하시다. 참 좋은 일이시다.’는 나의 칭찬에 노인은 신이 난 듯 말을 건다. 내가 시작했으니 휭하니 갈 수도 없다. 노인은 말하고 나는 듣는다. 속도야 나보다 느리긴 하다만 그런 대로 올라도 되겠다 싶어 이야기를 듣는다. 맞장구만 치고 나는 조금만 말을 보탠다. 우렁찬 목소리의 노인은 신나게 말한다. 그런데 한 말씀 한 말씀 새겨들을 만 하다.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연세를 물으니 81세란다.

 

믿기지 않을 만큼 체력이 좋은데. 노인을 앞세우고 걸으며 그분의 삶을 배워야겠다는, 내 삶의 스승이라는, 내 삶의 롤모델이다 싶었다. 노인은 거친 숨이 아니라 고른 숨으로 잘 흔들림 없이 걸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노쇠함의 냄새가 전혀 없을 만큼 목소리도, 걸음도 숨도 젊었다.

 

이런 저런 나의 칭찬에 노인은 신이 나는 듯 스스럼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자식들 잘 길러 효도를 받고 있다며 “엄한 부모 아래서는 효자 나고, 자유롭게 키운 부모 아래서는 개망난이 난다오.”란다. 이 말에는 공감하지 않으나 나는 맞장구를 쳐준다. 노인은 자신의 자식들 자랑을 하고, 옆집에 살던 부잣집 아들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러니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일밖에.

 

노인의 다른 이야기는 흘린다 치고, 지금도 맴도는 노인의 말은 ‘습관’이다. 노인은 반드시 아침은 다섯시에 어김없이 먹는다, 점심은 열두시에 저녁은 오후 여섯시에 먹는단다. 하루도 거름 없이 이를 꼭 지킨다며, 예컨대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열두시면 몇 정거장 더 가야 함에도 일단 내려서 열두시에 점심을 먹는단다. 때문에 주변에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걸 끈질기게 지킨단다. 덧붙여서 군대생활할 때 행정병이었는데 차트를 쓰다가 점심때가 되면 ‘강’자를 쓰다가도 ‘ㄱ’만 쓰다가 중단하고 점심을 먹었다 한다.

 

나 역시 습관이 중요하다는 걸 종종 말한다만, 이 정도로까지는 생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인의 씩씩한 발걸음을 뒤따르며 배울 점이 많은 스승임을 인정한다. 남한산성 능선에 올라 노인과 헤어지려는 데 노인은 아쉬운 듯 배웅한다.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면서 내 삶의 진정한 스승을 한 분 만났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우연히 만난 삶의 스승, 먼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듣지 못했을 노인의 삶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인의 말을 되새겼다.

 

진정한 스승은 말로만 가르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는 이들, 주변에서 만나는 이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분들의 살아온 이야기, 그분들의 삶 자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교훈이 또 있을까.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중에 내 스승이 있다. 착한 사람을 가려 그 행동을 따르고 악한사람을 가려 내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스승은 우리 삶의 여정 어디에나 있으니 내 마음을 열고 스치는 우연들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곧 좋은 가르침이요, 삶을 건강하게 또는 반듯하게 열어 가는 앞선 이들이 소중한 스승이라, 나의 이 마음은 평생학습자의 마음자세라 나는 생각한다. “젊어서는 열정의 힘으로 살지만 나이 들면 습관의 힘으로 산다.” 내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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