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95- 참 스승을 만나는 즐거움

영광도서 0 410

아직 추수를 못한 가을 들녘, 황금들판이다. 벼들이 익을 대로 익어 마치 금빛 융단을 깔은 듯 볼만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벼들, 잘 익은 벼들은 모두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은 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일부러 숙인 게 아니라 저절로 숙인 벼들의 모습, 알알이 늘어진 벼이삭이 탐스럽다.

 

노랗게 아름다운 벌판을 꾸민 잘 익은 벼들을 보노라면 벼들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그러하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잘 익은 벼는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면, 잘 익은 사람은 저절로 겸손을 보여준다는 교훈, 단순히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라 겸손이 배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진정 겸손한 이들이라 부를 만하다. 단순히 겸손한 이들이라 부르느니보다는 참 멋진 삶의 스승이라 모실만 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이들, 그런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이람.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꾼으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다녔다. 불행하다면 불행하고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때문에 나에겐 선생이 없었다. 그런 탓인지 나는 선생을 좋아했다.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하여 누구든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면 선생이라 부르기를 즐겼다. 무엇을 배워주는 선생이라 부르고 싶었다. 선생이란 말의 그리움,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싶었다. 그랬다. 압축해서 쓸 수 없으니 생략하고 나는 이제 선생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리스신화, 글쓰기, 고전 읽기, 인문학 등, 다양한 강의를 한다. 선생이라고 부르든 교수라고 부르든 작가라고 부르든 학문을 가르치니 선생은 선생이다. 덕분에 다양한 곳에 가서 강의를 하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정규적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이 있다. 월요일이면 도봉문화원에서 수필 강의를 한다.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다. 도봉문화원, 그냥 가르치는 즐거움으로, 아니 배우는 즐거움으로 강의를 간다. 가르친다는 생각만 하면 월요일이 다가올수록 귀찮을 텐데, 그와는 반대로 뭔가 설렘이 인다. 이유인 즉 난 도봉문화원에서 가르친다기보다 배우기 때문이다. 여기엔 선생이 아닌 스승들이 많다. ‘삶은 이런 거야.’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이런 말씀은 안하셔도 몸소 가르침을 보여주는 이들이 많으니 선생이 아니라 스승으로 마음에 모신다.

 

삼사 년 전에 한 분이 수필반에 새로 들어오셨다. 머리가 약간은 누리끼리한 뽀글뽀글한 머리를 하신 분이었다. 헤어스타일도 그렇거니와 자기소개를 하며 말씀하시는 문장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그랬다. D대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친 경영학 교수님이셨다. 게다가 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주눅이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이들을 대할 때보다는 조심스러웠다. 그래봤자 한 학기 정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만 파악하면 안 나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어느덧 만 삼 년이 지났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분의 진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분에게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의 덕목 겸손을 배웠다.

 

지금 이분은 남들이 꺼리는 반장을 맡고 있다. 벌써 일 년이 지나도록 반장을 맡아 봉사하신다. 학교에서 대학원장까지 하신 분이지만 서로 반장을 안 한다기에 할 수 없이 이분에게 반장을 맡을 것을 부탁드렸더니 거절을 못하시고 허락하신다. 수강하는 분들을 위해 학습자료 복사를 대신 해주신다든지, 소위 폼 안 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시면서 전혀 싫은 얼굴을 안 보여주신다.

 

한결같이 겸손하시다. 이분의 겸손은 겸손한 척이 아니다. 몸에 배인 겸손이다. 인생으로 치면 나는 한참 후배이지만 아주 받들 듯하신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부담스럽긴 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달까, 이분의 진심을 알아서랄까, 그보다는 이분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이는 덕분인지 그냥 편안하다.

 

그런 까닭에 이분을 만나면 그냥 나 역시 잔잔한 미소가 절로난다. 삶의 한수를 배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인생을 배운다. 겸손이란 척이 아니라 저절로 배임을 배운다. 들판을 곱게 꾸민 저 벼들, 알이 꽉 들어차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므로 저절로 고개를 숙인 벼처럼, 속이 찬 사람은 저절로 겸손이 배는 것임을 배운다.

 

나 역시 겸손한 척은 한 것 같다. 이분을 오래 만나면서 겸손은 척이 아니라 배이도록 하는 것임을 배운다. 이렇게 존경할 만한 이들을 만나는 건 참 즐겁다. 세상 어떤 지식인들보다도 내게 인생을 몸소 가르치는 이, 아름다운 삶을 가르치는 이, 인생의 가을을 맞는다면 그때는 ‘이렇게 사는 거야!’라는 듯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월요일이면 이런 스승들을 만나기에 강의하러 가는 마음이 즐겁다. 아니 강의하러 가는 게 아니라 삶을 배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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