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97- 방학동 은행나무처럼

영광도서 0 584

가을, 여행의 계절이란다. 높고 푸른 하늘에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날들의 연속이라 여행하기 딱 좋다. 그뿐인가. 도심만 벗어나면 어디를 가든 황금 들녘이 볼만하다. 시야를 조금 높이면 이 산 저산 울긋불긋 물드는 것이 이른 봄의 꽃동산보다 더 아름답다. 눈을 즐겁게 하는 풍경에 걷기에 딱 좋은 기온이니 여행의 계절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사색의 계절이란다. 여행하기 딱 좋을 만큼 어디를 가든 경치 좋고 활동하기 좋을 만큼 날씨도 맑고 기온도 적당하다만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계절이 또한 가을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생각이 많게 만드는 가을, 봄에 버금갈 만큼 아름답지만 봄의 아름다움과 가을의 아름다움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봄에는 죽어 있는 듯싶던 초목들이 다시 살아난다면 가을은 아름답기는 하나 머지않아 시들마를 모습들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마치 우리 삶과 같아서 슬픈 아름다움으로 비추는 때문이겠지.

 

지금의 모습들만 보면 저토록 아름다운데 곧 낙엽으로 변할 나뭇잎들을 미리 보기 때문에 쓸쓸함이 깃든다. 앙상해질 나무들이 나의 내일의 모습 같아서, 색깔을 잃은 저 풀들이 내일의 나의 무기력 같아서 아름다움 끝의 사색에 빠져드는 것일 게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 까닭이다.

 

방학동 연산군 묘 앞에 우뚝 선 은행나무를 보고 왔다. 수령이 900년 가까이 되었으니, 고려시대부터 살아온 셈이다. 아주 작은 새싹에서 시작했을 나무가 몸을 조금 조금씩 불리고 키워서 저리 거목이 되어 사람들의 보호를 받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볼만한 숲을 자랑한다. 위를 보면 나무라기보다 마치 숲을 이룬 것처럼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가을을 맞은 이 거목의 나뭇잎들은 어쩌면 한 잎도 빠짐없이 아주 노란 금빛을 자랑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는 금빛물결을 이룬 나뭇잎들의 삶의 춤사위들이 볼만하다.

 

아름다움, 저토록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몰래 과연 사색에 젖는다. 가을이란 계절 탓일지, 아름다운 모습 후에 이어질 앙상한 모습 탓일지, 아름다움 속에서 쓸쓸함을 본 탓일지, 사색에 젖는다. 이유야 어떻든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 맞다.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 주쯤이면 노란 은행잎들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를 포기하고 낙하를 시작할 것이다. 그때쯤 바람이라도 불면 무리를 지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는 노란 반짝이는 풍경이 아주 멋질 텐데 싶다. 그렇게 낙하의 축제를 벌인 다음엔 둥그런 마당을 이룬 나무 발치를 노란 융단처럼 장식할 테고, 그러면 아름다울 금빛 융단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다음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테다.

 

그걸 생각하면 허무한 생각이 나를 이끈다만 다시 생각하면 그런 아름다운 갈무리는 부럽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오는 인생의 마무리, 피할 수 없는 삶의 길, 그렇다면 기왕이면 저 거대한 은행나무의 가을처럼, 나 또한 아름다운 가을을 만들 준비를 하며 살았으면 싶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저 윤형진인데요. 제가 오늘은 수업에 못 가요.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요.”라며 꼭 수업에 참여 못할 때는 반드시 전화를 주시던 윤 선생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분은 평소 시를 적은 노트를 휴대하고 다니시면서 수시를 암기를 하셨다.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면서, 시를 1000편이나 암기하고 있는데 치매라니 말도 안 된다면서 평소 자주 말씀하시면서 시를 읊어 보여주시던 선생님, “저 윤형진인데요!” 라며 깍듯하게 예를 갖추어 전화를 주곤 하셨는데, 두 주간 전화를 안 하셔서 웬일일까 싶어 전화를 드렸으나 받지 않으셨다. 그러더니 한 주가 지나 선생님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 글을 쓰면서 공부를 하시더니, 팔십대 중반이니 더 사실 나이지만 암 투병을 하시다 그렇게 가셨다. 당신으로는 다시는 못 올, 나로서는 다시는 못 볼 일이 죽음이라 슬프긴 하지만, 그 분의 삶의 마무리는 아름다웠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으면 요즘은 죽기 사흘 전까지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일을 하다 죽고 싶다고 말한다. 윤 선생님이 그런 삶을 살다 가신 것 같다. 이승에서의 삶의 욕심이야 한이 없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것 같다. 때문에 아름다운 가을을 자랑하는 방학동 은행나무처럼, 윤 선생님 역시 아름다운 삶의 가을을 내게 남기고 떠나신 것 같다. 아름다운 은행나무, 파란 하늘을 수놓는 수천의 노란 잎들의 일렁임을 보면서 그 분과의 만남을 추억한다. 나의 삶의 가을도 그렇게 아름답기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쓸쓸함이 섞인 사색을 한다. 지금이 아닌 지금 후의 날들의 연속을 생각한다. 그 날들의 끝을 생각한다. 봄과 다른 가을의 아름다움, 그래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오늘은 은행나무가 나에세 삶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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