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3- 나는 글로 그림을 그린다

영광도서 0 551

글쓰기 강의를 나가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이다. 그러면 나는 보통 작가들이 말하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라!’는 말 대신 “잘 읽고, 잘 생각하고, 많이 써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한다. 물론 이 말에는 보다 생생하거나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감할 수 있는 설명을 덧붙여 설명한다. 그래야 설명을 듣는 이들이 확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이처럼 듣는 이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설명,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설명을 해야 제대로, 다시 말해 잘하는 강의이다.

 

강의는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듣는 이들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필요할 때 그것을 자신감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실제로 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차원에서 그 글을 읽는 사람을 우선이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쓴 글이라고 해도, 내가 쓸 때는 나의 글이지만, 독자가 글을 읽을 때는 그 글은 독자의 글, 독자의 글로 변환이 가능해야 한다. 내가 쓴 수필에 독자가 공감한다면, 내가 쓴 시를 독자가 자신의 시로 생각한다면, 그게 좋은 수필이요 좋은 시이다.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글은 독자의 몫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세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 사람에게라도 글은 공감하게 하거나 그의 글로 바뀔 수 있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채우기 위해선 글은 무엇보다,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잘 쓴다는 우선 조건은 묘사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글이든 글은 그림이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머릿속으로 영상을 얻는다. 그 영상이 생생할 때 좋은 글이다. 마치 글을 읽으면서 실제로 어떤 상황에 동참하는 듯, 어떤 그림이 생동감 있게 떠오르는 듯, 실제로 그런 냄새가 나는 듯, 그런 소리가 나는 듯, 그런 모습이 보이는 듯한 상황을 실감이라 한다. 글은 우선 실감하는 듯은 느낌을 주는 게 잘 쓴 글이다.

 

실감하게 하다, 실감하게 하려면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와 함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독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 이는 묘사를 이르는데, 글로 그림을 그리는 그림이 묘사이다. 따라서 작가는 무엇보다 우선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며, 자신이 전하고 싶은 사물이나 사건이나 상황을 실감나게 글로 그린다. 그림하면 우선 화가가 떠오른다. 화가는 색으로, 원근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작가는 오직 한 가지 색으로 모든 모양이나 색깔, 이야기를 글로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는 조건은 같으나 그리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그림을 읽는 대상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는 관객은 완성된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으나, 글을 읽는 독자는 한눈에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읽으며 스스로 머릿속으로 색을 칠하며, 모양을 떠올리며 읽는다. 때문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독자와 함께 그림을 그려간다는 마음으로 그려야 하는 이유이다. 작가가 글로 그림을 그리는 만큼 독자도 그만큼씩 읽어가기 때문이다. 한 단어를 쓰면 독자도 한 단어만큼 그림을 얻고, 한 줄을 쓰면 한 줄 만큼 독자고 그림을 얻는다. 작가는 묘사를 하고 독자는 묘사에서 심상을 얻는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는 건 머릿속으로 그림을 떠올리며 그대로 독자에게 그 그림을 제대로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글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독자도 그대로 그 그림을 전달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글을 써야 한다.

 

글은 우선 그림이다. 그 다음에 그 그림에 어떤 설명을 더할까, 어떤 의미를 더할까, 그건 다음이다. 그림 감상자체로만으로도 공감하거나 감동을 얻는 것처럼, 때로 훌륭한 독자는 그림 한 장에서 진한 인생을 읽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지 않던가. 때문에 나는 먼저 글로 그림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행위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읽는다는 것은 읽으면서 작가가 그린 그림, 곧 묘사한 것에서 나의 그림을 얻는 것, 곧 심상을 얻는 것이니까. 나는 묘사하고, 나는 심상을 얻는다. 나는 곧 작가인 동시에 누군가의 독자이다. 좋은 독자가 좋은 작가를 만들고, 좋은 작가가 좋은 독자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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