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4- 나는 반성한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영광도서 0 610

사람은 누구나 지난 일을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다. 지난 일들, 곧 과거는 내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지금의 나를 만들어놓은 원인이니 과거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싫든 좋든 과거는 나의 것이다. 나의 흔적이며, 나의 기억이며, 나의 삶의 축적물이다. 싫다고 버릴 수도 없고, 없앤다고 없앨 수도 없는 과거, 보이지는 않으나 기억에 남든, 실제 나의 모습이든 어떤 결과물로 남든 과거 또한 나의 것이다. 무엇으로 남든, 나에게 득이 되든 해가 되든, 나의 것인 과거의 산물들, 다만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이 다 중요하다.

 

이에 대해 최남선은 “지난 일을 후회하지 말라. 내일을 믿으라.”한다. 후회, 후회(後悔)는 지난 일을 돌아봄에 있어서, 그것이 비록 잠시 전이든 오래 전이든 과거에 내가 내린 결정을 잘못 내렸다, 그래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때문에 후회는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감정을 전제한다. 그러면서 그 일이 나 자신에게 중요한지 대수롭지 않은지를 따져 중요하다고 여길수록 후회는 더 크다. 지난 일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그 일이 사소한 일이라 판단하면 후회 역시 크지 않다. 이처럼 어떤 지난 일 중에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전제와 그 일의 중요도에 따라 후회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지난 일의 결과, 비록 그것이 실패한 결과이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라 하더라도 지난 일의 평가는 나 자신이 한다. 따라서 나는 지난 일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지난 일을 크게 후회할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인간인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다. 돌아보되 어떻게 돌아보느냐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을 돌아보되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지금의 나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들을 나는 돌아본다. 돌아보기는 하되 지난 일을 후회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반성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후회와 반성은 과거를 돌아봄에서 같다. 그러나 후회는 과거를 아파하는 감정이다. 과거를 아쉬워하는 감정이다. 물론 내가 내린 과거의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았을 때 아쉬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만 아쉬워하는 시간을 얼마나 유지하느냐를 묻는다. 아쉬움은 짧을수록 좋으니 잠깐 아쉬워하고, 지난 일을 그대로 인정하고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처럼 아쉬운 지난 결정이나 지난 일의 결과를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성이라고 나는 부른다. 돌아봄은 같으나 어떻게 돌아보느냐에 따라 과거는 후회의 대상일 수도 있고 반성의 대상일 수도 있다. 아쉬움의 시간을 길게 가지며, 거기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면 후회, 짧게 아쉬워하고, 과거를 앞으로의 일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다면 과거는 생산적인 것이니 이를 반성이라고 나는 부른다. 고로 후회는 고여 있는 과거이고, 반성은 보다 나은 미래를 여는 문이다.

 

때문에 과거에 발목 잡혀 두고두고 꺼내어 되뇌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그는 늘 과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의 그에게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왕년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전형적이다. 지금의 일이나 내일의 일보다는 과거에 자신의 업적을 말하거나 과거에 한 일을 자랑하는 사람, 두고두고 과거를 끄집어내어 아파하는 사람, 이렇게 과거에 발목이 잡혀 과거를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들, 이들은 과거에 잡혀 있는 사람이요,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이다.

 

반면 반성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를 사는 디딤돌로 삼는다. 과거의 결정을 참고로 현재의 결정을 현명하게 한다. 과거의 행적을 거울삼아 현재의 행동에서 시행착오를 줄인다. 또는 과거를 모두 끄집어내어 현재의 삶에 생산적으로 적용하거나 일단 모두 들추어내어 창작의 도구로 삼거나 글의 소재로 삼는다. 이렇게 일단 끄집어내어 그것을 활용하면 과거는 더 이상 후회의 대상으로 있지 않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디딤돌로 작용한다. 이렇게 과거를 생산적으로 평가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 충실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다. 고로 그는 행복하다.

 

과거는 이처럼 누구에게나 떼려야 뗄 수 없는 돌아봄의 대상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돌아보느냐에 따라 과거는 후회로 또는 반성으로 바뀔 수 있다. 고여 있는 과거로 남긴다면 그는 후회한다는 뜻이며 그는 지금의 삶 역시 불만이다. 반면 흘러간 과거로 여긴다면 그는 반성한다는 뜻이며 그는 지난 일을 다행으로 여긴다. 누구에게나 아쉬운 과거는 있다. 다만 아쉬운 과거니까 그것을 현재에 적용하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보다 생산적으로 과거를 활용할 뿐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반성한다. 이왕 지난 일을 지금을 사는 일에 디딤돌로 삼는다.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행복한 나에게 과거는 모두 추억으로 남는다. 아픈 일도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추억으로 삼으면 그 모두는 알록달록한 단풍들처럼 아름답다. 추억으로 남은 지난 일들이기에 그날들이 그립다. 돌아봄의 대상이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기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이 야릇한 감정, 나는 이를 행복이라 부른다. 지난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 나, 지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나는 행복하다. 그러므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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