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16- 나의 기억이 나를 만든다.

영광도서 0 538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체험한 것, 경험한 것만 기억한다. 나는 개가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가만 돌아보면 기억하는 것은 아주 적다. 특히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들은 거의 사라진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외적인 경험들이다. 외적인 경험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기억한다. 그래도 어제 살아온 일들을 시간대 별로 반추하면 얼추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으나, 세세한 내용은 없고 대략의 얼개 정도만 기억한다. 이처럼 보고 들은 것, 몸으로 부대낀 것, 모두를 기억하는 것 같으나 불과 한 시간 전에 내가 살아온 경험이라 하더라도 기억에 남은 것은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난 것을 나는 안다.

 

경험의 사전적 의미는 “실지로 보고 듣거나 몸소 겪음. 또는 거기에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 지각, 내성(內省) 작용 전체를 이르는 말. 또는 그 과정에서 획득된 의식 내용.”이다. 경험이나 체험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를 보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경험이란 내가 겪은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기억에 남은 것만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가 직접 보거나 한 것, 내가 듣거나 목격한 것,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나 나와 관련은 없지만 보거나 들은 것, 이 모두를 나는 기억하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아니하다.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경험이란 이 모두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은 것만 경험 또는 체험이라 부른다.

 

그러면 무엇이 기억에 남았을까? 적어도 기억에 남은 것은 내가 의미 있게 받아들은 것, 바꾸어 말하면 내가 가치를 부여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보면서, 무슨 일을 하면서,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미를 만들거나 가치를 만든다. 이 의미는 항상 긍정적이거나 좋은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부정적인 것이거나 나쁜 것도 의미한다. 오히려 부정적이거나 나쁜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저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떤 일을 겪으며, 무엇을 보면서 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한다. 때문에 기억하는 모든 것은 모두 의미를 갖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를 부여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나의 체험 창고를 이루는 기억, 나의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억, 이것을 나의 의도대로 채울 수는 없을까? 이 물음은 기억을 내가 지배할 수는 없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나의 기억을 어느 정도, 아니 상당히 지배할 수도 있다. 내가 의도하면 나의 기억창고는 훨씬 개선한 기억으로 채울 수 있다. 위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 가치를 부여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듯이, 무엇을 보거나 들을 때, 또는 무엇을 할 때 적극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면 가능하다. 물론 무의식적인 의미와 가치가 끼어들지 말란 법은 없다. 때로는 그런 무의식이 끼어들어 창의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무엇을 보든 의도를 가지고 본다면, 무엇을 하든 의도를 가지고 한다면 비의도적인 것이나 무의식적인 것은 의식이나 의도 또는 생각에 밀려난다. 다만 그러한 의도를 이길 만한 외부적인 충격이 들어설 때만 무의식이 기억을 밀어낼 뿐이다. 기억에 남는 대부분은 내가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의 기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사느냐에 따라 생긴 기준이 나의 의도이기 때문에 특별한 자기반성이 없는 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그러니까 통렬한 자기반성이 없는 한 나는 늘 별 의미 없는 고만고만한 것만 기억하며 살 수밖에 없다.

 

우선 나를 과감히 깨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더 넓게 기억할 수 있다. 나를 깨기, 그것은 일단 나에게서 벗어나서 나를 보려는 노력, 우리에서 벗어나 나를 보려는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서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재정립하거나, 우리 편이란 의식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면서도 나는 나를 옳다고 믿으니까 늘 제자리이다. 고로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옮겨 놓으려 한다. 항상 내가 옳다는 주관적인 내 편에서 벗어나 너의 입장에서 나를 보련다. 또한 우리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편이란 호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관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보다 생산적인 기억, 보다 긍정적인 기억, 보다 좋은 기억을 위해 나는 생각한다. 내 기억을 의도적으로 바꾸련다.

 

나는 기억한다. 그 기억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 만드는 기억이 나를 만들어 간다. 고로 나는 나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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