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21- 배설의 즐거움

영광도서 0 403

배설은 대부분 즐겁다. 쌓여 있거나 고여 있던 것을 밖으로 내보내니 즐겁다. 그걸 쌓아 놓고 있은들, 고여 있게 한들 의미가 없다. 보이지 않으니 즐겁지도 않고, 있다면 고작해야 포만감이나 느끼게 하고, 더부룩하게 하여 불편하니 내보내는 게 훨씬 가볍고 기분이 좋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한들, 아무리 비싼 음료를 마신다 한들, 그것은 입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간 순간ㄲ지이고, 그 다음엔 맛의 즐거움은 없다. 다만 누구와 어떻게 그것을 섭취했느냐의 정신적 즐거움만 여운으로 남을 뿐이다. 그 의미도 수 시간을 지속하지 않는다. 섭취당한 것들은 금세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여 있거나 쌓여 있던 것들은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부여 없이 배설한다. 특별한 즐거움도 모른다.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배설에 제약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버스에 탔는데, 종착지는 아직 멀었고,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나오려한다. 혼자만을 위해 사정을 하고 차를 세워달랄 수도 없다. 몸이 뒤틀린다. 참으려고 용을 쓴다. 잠시 참을 만하다. 다시 엄습하는 안에 쌓인 것들의 반란으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드디어 차가 멎는다. 가까스로 화장실을 찾아 배설한다.

 

쾌감, 케케묵은 수십 년 간의 퇴적물이 한꺼번에 나오는 듯한 기분, 그 기분은 아주 비싼 음식이나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상쾌함을 넘어 통쾌하다. 그때에 몸을 위해 배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배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

 

무엇이든 들어간 것은 시간차는 있어도 다 나오게 마련이다. 음식물의 드나듦이 원활하게 유지될 때 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영양보충을 위한 음식물 섭취는 논 외로 하고, 원활한 배설 역시 건강의 비로미터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신체 건강의 척도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이거나 고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귀찮다고 참으면 나중엔 변비를 불러올 수도 있고, 소화불량을 불러올 수도 있고, 여러 질병을 부를 수도 있다. 때문에 몸의 건강을 위해 적당한 배설은 필수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선 건강한 배설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의 건강도 마차가지이다. 몸을 위해선 먹고 싸는 문제가 있듯이, 정신을 위해선 건강한 입력과 건강한 출력이 필수이니, 출력은 곧 배설과 같다. 이를테면 우리의 삶은 삶 자체가 입력의 과정이다. 매 시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의 정보들, 그것이 사소하든 중요하든, 의식하든 무심코 넘기든 알게 모르게 그 모든 것들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내 정신에 들어온다. 들어온 것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정신에 남는다.

 

음식물로 비유하면 쌓이고, 음료로 비유하면 고인다. 그렇게 쌓이거나 고인 것들은 밖으로 나가려 한다. 그것은 순리이다. 때문에 몸이라면 쌓인 음식물을 적당히 배설해야 하고, 마음이라면 고인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럴 환경, 마음에 고인 것들 또는 쌓인 것들을 표출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건강하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마음에 무엇인가를 쌓으며 산다. 고인 것들을 방치하며 살거나 그럴 수밖에 없어서 가둬놓고 산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병이 든다. 원인 모를 불안과 초조, 원인 모를 답답함, 그런 정신적인 질병을 넘어 신체의 질병까지 유발하는 삶의 퇴적물들을 누구나 안고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삶의 퇴적물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건전한 방법으로, 표출하며 산다. 그것을 승화라 부른다. 하지만 인내심 하나로, 그저 나는 착하다는 자부심 하나로 모든 것을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사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 있다. 이런 이들에게 배설의 쾌감, 곧 삶의 배설의 쾌감의 순간이 필요하다. 참고 참았던 삶의 퇴적물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배설해야 건강의 청신호를 얻을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배설해야 한다. 몸으로 풀든, 운동으로 풀든, 말로 풀든, 글로 풀든 풀어서 내보내야 삶의 변비와 삶의 방광염 또는 삶의 비대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배설한다. 글로 배설한다. 내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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