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23- 예술 좀 합시다!

영광도서 0 548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선 구순기에 이어 오는 시기가 항문기, 곧 배설욕구의 시기이다. 그는 이때엔 배설로 근원적인 리비도를 해결한다고 한다. 배설과정에서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항문성격이라고 한다. 즉 아이가 리비도를 충족하려는 시기를 항문기라하고, 이때 영향을 받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항문기의 행위에서 변형된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하려는 시도를 항문성격이라고 한다.

 

항문기에 리비도가 억압되는 예로는 일단 아이가 잠을 자는데 너무 깔끔한 엄마는 아이가 깰 정도로, 잠을 방해할 정도로 기저귀를 간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깔끔하게 늘 처리한다. 반면 아이가 불편하도록 배설물을 방치한다. 이렇게 항문기엔 두 가지 성향의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성립한다. 이때 너무 깔끔하기 때문에 또는 너무 불편하게 방치하기 때문에 받는 아이의 스트레스는 무의식에 침전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삶이 꼬이거나 일이 잘 안 될 때, 아이가 아닌 그는 이제 이전에 충족하지 못한 리비도를 충족하려고 그 시기로 회귀하려 한다. 이를 항문성격이라 한다. 때문에 이런 성향은 너무 완벽주의자라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초조, 우울 등의 증세로 변신한 리비도를 드러낼 수 있으니 신경증적 증상들이다. 이와는 달리 그때 못다 한 리비도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자유분방하게 성욕을 채우려는 성향을 갖기도 한다.

 

이 중에서 이 시기에 예술적인 성향이 드러낼 수 있는데, 똥과 리비도의 관계이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배설물이 더럽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냄새가 역겹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아이에겐 배설물은 최초의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그것을 즐긴다. 하여 똥을 싸고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그것을 가지고 조몰락거리며 놀이를 한다. 그러면 엄마는 깜짝 놀라 아이의 놀이를 중단시키고 얼른 치운다. 아이는 울어댄다. 그러면서 아이의 배설 놀이 욕구를 중단시킨다. 이때에 받는 스트레스는 그대로 무의식에 가라앉는다. 침전이다. 그런데 중단을 당하니 욕구 불만이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다. 그는 그때에 충족하지 못한 리비도를 이제는 변형된 모습으로 채우려 한다. 똥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는 두 가지 성향으로 나타날 것인데, 자유분방한 리비도로 자유로운 성을 구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의 방향을 잘 설정하면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똥을 가지고 놀았듯이 자신에게서 나온 삶의 배설물로 예술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삶의 배설물은 예술이다. 자기 배설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누구나 삶을 산다. 누구나 삶을 입력한다. 누구나 삶을 배설한다. 예술적으로 할 것이냐 분풀이로 할 것이냐는 각자의 몫이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아니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게 해석한 자신의 삶의 퇴적물들을 어떤 이는 예술작품으로 내어놓고, 어떤 이는 그야 말로 역한 삶으로 배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요. 배설하되 기왕이면 예술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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