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좌충우돌 세상읽기-126- 부드러운 혀를 잘 놀리면
인간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의사소통 수단은 변화를 거듭한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것 역시 소통의 기준이다. 이를테면 말이나 몸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하고 삶의 모습을 전달하거나 전수하던 시대를 선사시대라 하고, 이러한 원시적 수단을 넘어 문자를 매개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유물을 문자를 이용한 기록으로 전달하거나 전수하는 시대를 역사시대라 한다. 이제 우리는 역사시대에 산다.
거창하게 인류니 역사니 논하지 않더라도 말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용이한, 즉흥적인 의사소통수단이다. 말을 생각하면 우선 혀를 떠올리고, 혀는 우리 지체 중 가장 부드러운 지체이며, 그리 길지 않은 세 치밖에 안되지만 어떤 말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부위이다. 편리와 경제적인 면에서 아주 효과적인 혀, 이 혀는 잘못 사용하면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수단인 동시에 타인을 죽게 만드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혀는 부정적인 역할의 첨병이다.
그렇다고 혀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혀를 잘 굴리면 죽을 사람을 살리는 역할도 한다. 부드러움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혀이기도 하다. 이 혀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말로 어떤 이는 죽고 싶은 마음을 돌려 삶의 용기를 얻는다. 어떤 이는 참혹한 어둠의 늪으로 빠져드는 절망의 늪에서 희망을 얻는다. 어떤 이는 혀에서 만든 부드러운 말로 상처 받은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런 면에서 혀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밴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지체는 때로는 흉기일 수도 있고 훌륭한 약일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지체의 주인인 나의 몫이다. 내 지체, 내 부위를 어떤 용도로 쓰느냐는 그것의 주인이 내 몫이다. 내 몸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주인을 만난 덕분이요, 내 말이 아름다울 수 있음 역시 주인이 나를 만난 덕분이다. 그러니 이용당하는 지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주체가 문제이다. 내게 주어진 지체, 소중한 나의 혀, 나의 말, 나의 혀와 말을 부정적인 흉기로 사용하기보다, 긍정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어제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했던가? 그 말들로 혹시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칼로 얻은 상처는 약 잘 바르고 붕대로 정성스럽게 싸매주면 하룻밤 지나고 나면 비록 상처는 남더라도 아프지는 않다. 그러나 말로 입은 상처는 두고두고 아프다.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아프다. 이를테면 칼로 베인 상처는 이러 저러한 약이 많이 준비되어 있으나 말로 입은 상처는 치료약을 찾기 어렵다. 말로 입은 상처는 결국 말로 치료를 얻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 남에게 말로 상처 주지는 않는지 말을 가려 해야겠다. 혹여 상처를 주었다면 그 상처가 도지지 않도록 먼저 진정어린 사과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도록, 남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남의 아픔을 잘 싸매줄 수 있도록 말을 골라야겠다.
세 치밖에 안 되는 혀로 하는 나의 말들은, 오히려 내 안에 썩고 부패한 말들을 감추고, 비록 위선일지라도 기왕이면 남에게 득이 되는 말, 남에게 치유가 되는 말만 골라서 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로 세상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진실한 인간은 못 되어도, 위선자가 되고 싶다. 추한 진실보다는 아름다운 위선을 선택하련다. 마음은 더럽고 추잡하여도 혀로는 아름다운 말을 골라 하면서 선한 척하련다. 물론 마음마저도 선하고 아름다우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