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27- 가장 잘 놀릴 수 있는 손가락의 힘

영광도서 0 424

혀가 우리 지체 중에 가장 부드럽다면, 손가락은 우리 지체 중 가장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부드러운 혀는 잘 쓰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거나 삶의 용기를 주며,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 위로하고 감싸기도 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또한 잘 못 쓰면 다른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죽음을 주기도 하며, 또한 다른 이의 마음을 할퀴고 마음을 흠집 내어 죽고 싶게 한다. 이처럼 부드럽거나 자유로운 둘 모두, 잘 쓰면 아주 유용하고 좋은 지체이지만, 잘 못 쓰면 둘 모두 아주 무서운 흉기처럼 쓰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젠 시대에는 의사소통하면 글보다 말이었다. 글을 몰라도 말로 소통이 가능한지라 말은 글에 비해 말은 대부분의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훨씬 적었고, 즉흥적으로 쓸 수 있었고, 특별한 도구도 필요 없이 쓸 수 있었다. 때문에 말은 의사소통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때문에 말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연히 많이 그리고 쉽게 쓰인 말들은 때로 다른 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흉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도 남았다.

 

시대가 지나면서 이제는 역설적으로 말보다 글이 소통의 역할을 많이 한다. 시대가 발달할수록 즉흥성, 편이성, 생산성, 경제성으로 말이 더 많이 쓰일 것 같으나, 역설적으로 오히려 글이 더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인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스마트 폰의 보편적인 보급으로 글은 말의 역할 이상을 도맡는다. 심지어 요즘 어린이들은 함께 논다면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말로 할 것을 카톡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글은 말에 비해 즉흥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요즘은 글이 말과 별 다를 바 없이 즉흥성을 띈다. 말이 곧 글이고 글이 말인 시대이다. 별 생각 없는 말로 말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부작용이 있었다면, 이제는 말과 속도가 같아진 글은 생각을 동반하지 않는 즉흥성으로 이전 시대의 말의 부작용처럼 그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때문에 이제는 글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죽게 만드는 끔찍한 흉기 역할을 한다.

 

생각 없이 내 뱉는 말을 혀가 갖고 놀듯이, 생각 없이 써대는 글을 손가락이 갖고 논다. 우리 지체 중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이 이 시대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나 다른 이들을 죽게 만드는 흉기 역할을 한다. 더구나 말보다 이제는 글이 훨씬 즉흥적이며,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편이성까지 갖추고 있다. 말이 오히려 제약이 있으며, 글은 아무런 제약 없이 공간과 공간을 넘어선다. 기록성을 갖춘 덕분에 시간과 시간을 넘나든다. 언제 어디서든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고, 상대를 공격할 수 있게 한다. 이 모두를 손가락이 만들어 간다. 때문에 이제는 손가락은 비록 짧으나 손가락은 세상의 어느 무기보다 강한 무기이자, 아주 무서운 흉기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포탄에 죽는 사람보다 손가락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다고 한들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손가락이 나쁜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손가락을 잘 놀리면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잇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가진 주체이든 주인이든, 그것을 쓰는 이가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는 이 손가락, 이 곱고 어여쁜 손가락, 참 소중한 손가락, 세상을 이롭게 하라고, 너를 창의적으로 만들라고 신이 내려준 이 손가락, 그야 말로 선의 도구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도구로 써야겠다. 손가락 잘 못 놀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죽고 싶게 만들거나 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 아주 잘 노는 이놈의 손가락을 쓰기 전에 손가락에 내 생각을 얹어 기왕이면 좋은 일하는 손가락, 좋은 글 쓰는 손가락으로 조절해야겠다.

 

손가락, 손가락, 손가락, 잘 쓰면 천사와 같은 손가락, 잘 못 쓰면 악마와 같은 손가락, 오늘 아침에도 손가락에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손가락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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