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29- 다시 일어서는 나 그리고 너

영광도서 0 415

같은 사안이라도, 아니 같은 사안에 같은 결과를 얻은 일이라도, 물론 객관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거나 실패한 일 또는 힘든 일이거나 슬픈 일일지라도,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누군가는 그 일을 다행한 일, 감사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원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으로 이 일은 끝난다. 하지만 이 일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어떤 사안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사람의 가치관 또는 그의 성격이기 때문에 다른 일에도 그의 기준은 거의 같다.

 

세상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마음의 자세는 단순하지 않다. 그 마음의 자세는 그의 삶을 좌우한다.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살아온 시간의 중첩을 들여다보면 그런 마음 때문에 지금 그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현재 역시 그러하여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접하고,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왔느냐하는 삶을 대하는 방식이 지금의 나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다행이다, 이만해도 고마운 일이다, 이 마음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음을 내가 나를 증명한다.

 

반면 나와 같은 조건이거나 나보다 나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세상 탓하며 산 친구들 또는 형제도 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원망한다. 원망할 사람을 찾는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지금의 그들이다. 더러는 운이 좌우한다. 세상이 나를 속인다. 푸쉬킨이 시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희망의 날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지느니.”라고 읊었듯이, 순간들을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양보로 받아들여, 그럼에도 세상은 살만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생각으로 순간을 극복하면서 보다 열심히 살면 세상은 더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

 

그러니 원망하지 말 일이다. 원망은 아직 과거에 잡혀 있음을 자인한다. 과거로 돌아가 있음이며, 과거에 머물러 있음이다. 그러니 현재를 회피하고, 현재를 처리하지 못하고,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는 전혀 전망하지 못한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은커녕 시간만을 죽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일이든 잘 될 리가 없다. 문제는 어쩌다 해결될 뿐이다. 해결된다기보다 시간이 흘러 무의미한 일로 만들 뿐이다.

 

세상은 살아지는 대로가 아니라, 자포자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며, 헤쳐 나가는 것이다. 지난 것은 아무리 되돌리려 한들 소용없다. 그것을 후회한들, 누군가를 원망한들 되돌려주지 않는다. 차라리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란 노래 가사처럼, 그것을 하나의 교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때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그런 결과에는 뭔가 교훈이 있다는, 뭔가 부족한 삶의 자세든 열정이든 능력이든 있었음을 인정하는 마음, 그것이 지난 일을 원망이 아닌 의미로 받아들이는 반성의 자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세상이건 부모건 그런 좋은 조건을 만나지 못한, 금수저, 은수저는커녕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들처럼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삶이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세상이 감사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감사하다, 특히 네가 감사하다, 이 마음으로 나는 산다. 그래서 이만큼이라도 산다. 그럼 잘사는 것 아닌가? 남한테 피해 안 끼치고 남한테 별로 아쉬운 소리 안하고, 내가 나를 책임지고, 가족을 책임지고 살고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고! 나는 내가 좋다. 세상을, 과거를, 사람들은 원망의 대상이나 후회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감사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이 감사하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사니? 세상 원망한들, 누군가를 원망한들, 너에겐 아무 도움이 안 돼. 끊을 건 끊고, 해결할 건 해결하고, 해결이 안 된다고? 그럼 직면해서 어떤 쪽으로든 결정을 내. 그리곤 확 털어버려. 그리고 지금이야. 지금부턴 무엇을 보든 원망으로 보는 시각에서 감사의 대상으로 봐. 원망의 대상으로 사람을 보지 말고, 다행 대상으로 봐. 비록 네게 나쁜 짓을 한 놈이라도 세상엔 이런 놈도 있구나, 다신 이런 놈 만나면 안 되겠다는 걸 네게 가르쳐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해봐. 나쁜 놈이긴 해도, 너에겐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아니 너와 내가 어떻게 사람을 바꾸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깨달아 변하려 해야 변할 수 있다. 아니 변한 게 아니라 변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성격은 타고난 대로 살아간다. 다만 변하려는 노력 덕분에 인격이 성숙해져서 성격을 이기는 것이며,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바꾸려 애써 보자. 그런 나와 너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이고, 품격을 높인 사람이다. 이나마 참 다행이다, 돌아봐도 참 다행으로 살아왔다, 이 마음으로 살자고. 가난한 사람에겐 돈도 잘 안 빌려주는 것처럼, 신도 희망 없는 사람에겐, 감사가 없는 사람에겐 새로운 기회도 주지 않을 테니까. 원망이나 하는 사람에게 신이 새로운 기회를 주겠니? 아자! 다시 일어나 뛰는 거야. 신은 비록 뛰지는 못하더라도 걷는 자를 돕는 거야. 주저앉은 자, 실의의 빠진 자는 냉정하게 돌보지 않는다고. 그러니 자 일어나서 절룩거리면서라도 걷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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