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좌충우돌 세상읽기-146-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영광도서 0 472

인간 최초의 지식은 선과 악으로 성경은 말한다. 그때부터 인간은 무엇이든 선과 악의 기준으로 논한다. 쉽게 말하면 좋은 것은 선, 나쁜 것은 악이라 한다. 그런데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다,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그 기준이 무엇인가, 누가 기준을 정하나, 여러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파악의 룰을 만든 인간은 선과 악을 그런 룰에 비추어 보지 않는다. 아마 선대에선 그렇게 물어서 선의 기준을 만들었고 악의 기준을 만들었을 터이다.

 

최소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기준을 아예 논외로 하고 무엇을 대하든 누구를 대하든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누구는 선이고 누구는 악이다, 이 무리는 선이고, 이 무리는 악이다라고 이미 규정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그것마저 넘어서 우리는 선이고 너희는 악이다라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과연 우리는 선이고 너희는 악일까?

 

‘善’의 사전적 의미는 ‘올바르고 착하여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맞음’이다. 철학의 이상이 진에 있다면 선은 윤리적 생활의 최고 이상을 말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선이 세상을 완전히 뒤덮어서 도무지 악이라곤 찾을 수 없었던 시절, 인간에겐 그런 온전한 시절은 딱 한 번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곧 에덴의 시절이요, 낙원의 시절이다. 인간은 항상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오직 선만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그곳, 찾을 수 없는 그곳, 때문에 마음에 이상으로 품고 있는 그곳을 향한 희원을 노스탤지어, 우리말로 향수라 한다.

 

선만 있었다, 그런데 선만 있던 곳에 악이 들어왔다, 그것을 성경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으로 설명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 선이란 그때 만든 기준이니, 태초에 제일 먼저 생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천지창조 이전엔 혼돈이었으니, 혼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무엇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인 상태가 혼돈이다. 여기에 무엇이든 만들어지는 순간, 능동적으로는 만든 순간, 혼돈의 영역은 점차 뒤로 물러난다. 때문에 카오스 곧 혼돈은 질료인 셈이다. 질료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든 다른 대상이 나오지 않는 한 그것은 선이다.

 

성경은 때문에 창조행위를 모두 선이라 한다. 성경을 보라! 무엇을 만들든 창세기 1장에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한다. 누구의 기준이냐, 그것은 신의 기준이다. 그러니까 절대선이 있다면 인간이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이다. 그러한 기준을 인간이 가져온다. 신을 만나지 못하니까 마치 신을 만나서 그 기준을 얻은 듯이 판가름한다. 그러니까 선을 논하는 이들은 신이 보시기엔 오만하거나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이브를 보라. 뱀의 유혹을 받은 이브가 선악과를 바라본다. 여기에 악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좋았다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단독으로는 불가능함에도 성경엔 좋았더라, 완료형만 있다. 나빴더라는 없었다. 대칭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때만 절대란 말이 성립한다. 다시 이브의 풍경을 보자. 이브가 뱀이 따먹으면 신만큼 지혜로워질 것이라고 유혹하자, 문제의 과일을 바라본다. 그랬더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인간 여자가 처음 판단한 것, 곧 선과 악이다. 하나의 대상을 갖고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무엇이든 선과 악, 곧 좋다 나쁘다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죄가 들어오고 벌이 들어온다. 다시 말해 무엇을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지 않으면 죄도 없고 벌도 없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그에겐 선과 악이 없다. 이브를 만나기 전이요, 선악과를 먹기 전의 상황이 갓난아기인 셈이다. 그 이후 인간은 무엇을 보든 좋다 또는 나쁘다로 본다. 판단한다. 좋은 것,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어떻게 좋은 것인가, 왜 좋은 것인가? 그런 고민 없이 이미 정한다. 다음 단계에서 선은 정의로 통한다. 다시 말하면 좋은 것은 정의요, 나쁜 것은 불의다. 그러니까 선은 정의, 악은 불의로 발전한다.

 

이브의 후손인 우리는 신의 시절을 넘어 신을 만나지도 않고, 선과 악을 마구 결정한다. 나에게 좋으면 선, 나를 좋게 만드는 것은 정의이다. 나에게 좋은 것은 과연 선이고, 나를 좋게 만드는 것은 과연 정의일까?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누가 그 기준을 만드나, 그 기준은 정당한가,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을 구분하는 나는 창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로 돌아가려는 오만한 몸짓의 소갈머리를 가진 존재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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