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내 유년의 첫 기억

영광도서 0 591

새로운 글을 연다. 어제 4,000번 째 아침 글을 섰다. 오늘부터 새로울 것 없는 새로운 글을 시작한다. 거창하게 세상읽기로 150편의 내 나름의 개똥철학을 썼다면 오늘부터는 티끌보다 가벼운 내 삶의 기억을 찾으려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가장 먼 나의 삶, 그만큼 내 밑바닥 어디쯤 있어서 찾기 어려울 수 있을 듯싶은 기억을 찾으려 한다.

 

아니다. 먼 기억이긴 하지만 찾기 어렵지 않은 기억이다. 물론 전후좌우 맥락은 잘려 있긴 하지만, 대지에 비하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남은 토막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더 뚜렷한 기억이다.

 

저 유명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저랄까 그의 일생의 대작이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와 같은 동명의 제목으로 시작하지만, 고상한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냥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기억을 더듬어보려 할 뿐이다. 살아 있어도 사라져 갈 기억들, 그렇게 가치 있는 기억은 아니어도 나만의 기억에 남은 일들을 추적하려 할 뿐이다.

 

첫 기억은 그야말로 지금의 내게서 가장 먼 기억이다. 길지도 않다. 아주 짤막한 심상 하나로 남은 기억이 내 인생의 첫 그림이다. 아득한 꿈같기도 하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 같기도 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 기억을 나의 첫 기억이자 지금의 내게서 가장 먼 기억이라 말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엄마 살아 계실 때 대화를 나누었다.

 

“작은누나랑 싸리가지로 만든 울타리 사이에 난 문가가 있었어요. 개울 건너 편 길로 군인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어요. 크고 횐 별이 새겨진 군청색 군인차들이 먼지를 풀폴 날리며 달리고 있었어요.”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은 이 대목이다. 다른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실제로 그런 동네가 있었단다. 실제로 군인차가 집 앞 건너 길로 많이 지나다녔단다. 때로는 삼판 마무를 싣고 달리고, 짐을 실어 나르는 군용차였단다. 그러니 이 기억은 꿈이 아니고 생생하게 남은 나의 기억이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세 살 무렵일 터이다. 엄마는 그곳이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의 흑둔지라는 곳이었단다. 그러니 내 인생의 시작은 그때였다고 말하리라. 물론 그때야 거창하게 인생이라 할 것도 없다만, 그때 나는 살아 있었다.

 

첫 기억! 아들러는 첫 기억을 유의미한 무의식으로 본다. 첫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가령 첫 기억이라고 기억하는 것을 추적하면, 어느 누군가의 기억 중 “상여가 보였어요. 엄마가 무척 슬프게 울고 있었어요.”라는 대목만 기억한다면, 이 기억의 그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지배한다기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의사가 되거나 작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할까, 그 생각이 그의 무의식에 남아 죽음의 슬픔을 해결하려는 방법을 찾는다,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무의식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아니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무의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나는 모르겠다. 나의 첫 기억의 이 도막난 기억이, 외로운 섬처럼 점찍은 듯 남은 내 인생의 그림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뚜렷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이다. 이전의 나는 모르니까 어쩌면 가장 소중한 진귀한 기억일 수 있다. 싸리장문, 군용차들 그리고 작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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