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 조기 한글 교육
때로는 인생이 허접한 듯해도 가만 생각하면 인생처럼 촘촘한 것도 없을 듯싶다. 성근 지푸라기들을 촘촘히 엮어 짠 맷방석이라면 조나 깨를 제외한 낟알들은 새나가지 않을 정도로 빈틈이 없듯이, 인생도 순간순간에 작은 움직임들이 빽빽하게 조각퍼즐들처럼 박혀 지금을 이룬 게 아닐까 싶다. 지난날로 돌아가 하나하나 복귀하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않았다면, 않았다면 식으로 되뇌면 지금의 나와는 아주 다른 나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어디서 어떻게 훔쳐 배우셨는지, 능숙하지 않으셨지만 간신히 한글을 읽고 쓰셨다. 엄마는 어른이 되어서 야학으로 조금은 한글을 배우러 다니셨으나 당시의 여자들에겐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어서 형식적으로 배우는 척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6.25 끝나고 면에서 의무적으로 한글 깨우치기를 의무적으로 가르친 것 같았다. 시험을 봐서 한글을 깨우쳤다는 확인을 받아야 그만 가도 되었다 하셨다. 때문에 엄마는 큰형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큰형이 키가 작았기 때문에 어린 줄 알고 함께 있어도 허용했는데, 큰형이 거의 대신 풀어 과정을 통과했다 하셨다. 때문에 우리 집엔 한글을 제대로 알고 가르칠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글 조기교육을 받았다. 작은누나와 나는 6년 차이, 작은누나는 애들 보느라 거의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작은형 역시 학교에 다른 애들보다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학교에 다니기 싫어했다. 학교가 멀기도 했지만. 그런데 어떻게 한글을 깨우쳤는지 작은누나는 아주 머리가 영리했다. 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내가 일곱 살이거나 여섯 살 무렵 나를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쳤다. 나는 아주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순종적이었다. 제대로 정이도 아닌 종이에 누나는 가갸거겨 고교구규 나냐너녀 노뇨누뉴 식으로 한글을 가르쳤다. 워낙 내가 잘 알아듣는다면서 누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가르쳤다. 작은누나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모두 읽고 쓸 줄 알았다. 웬만한 덧셈 뺄셈을 능히 해냈다. 당시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제대로 아는 아이는 거의 없었을 텐데, 나는 작은누나에게 조기교육을 제대로 배운 셈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당엔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쌓이는 초가지붕 아래 안방에서 나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댕기머리 작은누나,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작은누나의 힘이 컸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깨닫는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를 본다. 결석일 수 33일, 그럼에도 우등상장을 받았으니, 작은누나의 조기교육 덕분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었지만 지금은 소위 작가라고 가끔 폼을 재는 것, 작은누나가 한글을 조기에 가르치지 않았으면 가능했을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총명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은 덕분에 어려서부터 공부에 취미를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그 순간순간들이 내 인생에 촘촘하게 박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물론 필연일 수도 있지만.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특히 고생 많이 하셨다. 고마운 분들이다. 엄마가 떠난 하늘, 누나들도 이젠 노년의 길을 걷는다. 오늘은 누나들에게 모처럼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요놈의 코로나19 끝나면 누나들을 만나러 춘천행 전철을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