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8- 자반고등어와 흰 쌀밥

영광도서 0 500

본격적인 봄으로 접어들 무렵이면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 놈들은 홀로 살지 않고 무리지어 산다. 아무 곳에서나 아주 잘 자란다. 때문에 여기 저기 덤불처럼 많이 볼 수 있다. 겨울이면 잘라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도 생나무임에도 쪼록쪼록 소리를 내며 잘도 탄다. 하여 이 나무를 굳이 조팝나무라 부르지 않고 쪼록싸리라고 부른다. 잔뜩 무리지어 피는 이 나무들이 꽃을 피울 무렵이면 볼만하다. 마치 흰 쌀을 가지런히 얹어놓은 듯하다. 달밤이면 달빛을 받아 더욱 희어 보인다.

 

이 꽃들이 핀 것을 볼 때면 어린 마음에도 저 꽃들이 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쌀밥 한 번 실컷 먹어 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럴 만큼 쌀밥을 먹기는 어려웠다. 쌀밥은커녕 낟알 들어간 밥 먹기도 어려웠다. 옥수수밥이라도 먹기 전에는 거의 나물죽이었다. 산에서 뜯어온 나물을 잔뜩 넣고, 옥수수를 맷돌로 타갠 싸라기 모양의 옥수수쌀을 넣어 죽을 쑤었다. 그걸 어린 나도 한 냄비는 먹었다. 그러면 배는 마치 개구리 배처럼 불렀다. 빈한하게 사는 아프리카 아이들 모습이 그때 우리들 모습이었다. 나물죽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숨을 쉬기도 어려울 만큼 씩씩 거렸다. 배가 튀어나와 소위 아래 거시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안 지나 배는 푹 꺼졌다.

 

그러다가 옥수수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날은 왔다. 밥을 짓자마자 먹으면 그런 대로 먹을 만하나 식으면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물을 끓여서 말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쌀밥이 그리웠으랴. 눈이 내려 쌓이면 눈이 쌀가루였으면 싶었고,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진 봄날이면 쌀이었으면 싶었다.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았다. 모내기 하는 날과 벼 타작 날, 생일날이거나 제삿날에만 간신히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른 날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제삿날이었다.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의 전날이라지만 실제로는 돌아가신 날 첫 시간에 지낸다. 밤 열두시이다. 쌀밥을 먹으려면 제사를 지낸 후에나 가능하다. 때문에 밤 열두시를 지나 새벽 한시나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그제야 쌀밥을 똑같이 배분하여 한 사발씩, 게다가 자반고등어 한 토막씩 엄마가 나눠주신다. 그러면 쌀밥 한 숟가락에 고등어 아주 조금 올려놓고 먹는다. 그 맛이야 어디에 비하랴.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과 반찬이다. 그걸 먹고 자기 위해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참으며 기다려야 한다.

 

어느 제삿날도 그랬다. 기어코 쌀밥에 자반고등어 먹을 생각에 잠을 억지로 참았다. 쏟아지는 잠을 참느라고 참았다. 거의 열두시까지 참았던 것 같다. 분명 그랬는데, 이제 쌀밥을 먹겠구나 싶었는데, 분명 밤중일 줄 알았는데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쌀밥 한 그릇과 자반고등어 한 토막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분명히 잠을 참았는데 아침이라니, 너무 억울해서 서럽게 울었다. 아이들도 서럽게 울 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이었다. 엄마가 내 몫으로 남겨둔 쌀밥 한 그릇과 고등어 한 토막을 주셨다. 그제야 억지로 울음을 그치고 쌀밥을 먹었다.

 

그때의 쌀밥의 맛과 자반고등어의 맛, 그때 이후로 그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 엄마의 마음, 잊은 적이 없다. 분가해서도 어쩌다 뵈러 가면 어딘가에 먹을거리를 숨겨 두셨다가 찾아다 주시곤 하던 엄마, 아버지를 닮아 떡 좋아한다면 누이들이 사다 드렸을 떡이며, 비타50이며, 박카스며, 사탕이며, 그것들을 드시지 않고 보관하셨다가 이것저것 가두어 먹이시려 애쓰시던 엄마,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이긴 한가 보다.

 

이젠 어디 가서 엄마의 그런 사랑을 받아보나? 다시는 볼 수 없을 때 보고 싶음을 그리움이라 한다지. 하얀 쌀밥 한 그릇에 간이 잔뜩 밴 자반고등어, 이젠 챙겨주실 엄마는 그리움일 뿐이다. 그때 그 맛은 아닐 테지만 코로나19 떠난 후엔 비슷한 음식이라도 찾아 먹어야겠다. 그냥 엄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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