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6-공부는 잘하지만 용모가 불결합니다

영광도서 0 439

언어에서 역접을 나타내는 말은 대부분 앞말보다 뒷말에 의미를 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도 실제로는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의 의미로 역접이다. 앞말은 다분히 뒷말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이, 당사자에겐 칭찬인 듯 보이면서 조언하거나 비난할 때도 역접을 이용한다.

 

가끔 버릴 것들을 찾아내느라 이것저것 뒤지다가 초등학교 때 생활통지표들을 발견했다. 여기엔 생활습관을 ‘가나다’로 표현하여 제일 양호하면 ‘가’로 항목 옆에 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다. 성적은 1학기 2학기 나누어 과목 밑에 ‘수우미양가’로 선생님이 직접 써 넣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보내는 항목에 작은 글씨로 쓰면 서너 줄 쓸 만큼의 칸이 마련돼 있다. 통지표에 성적은 좋았다. 생활습관 좋았다. 그런데 학부모 통신란에 내용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공통적으로 “공부는 반에서 최고 양호하지만 용모가 불결합니다.” 란 것은 선생님들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표현만 비슷할 뿐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다른 칸에는 “활동에 열심이고 관심이 많습니다. 학습도구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라고 적혔다.

 

그 당시엔 교사가 학부모를 면담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선생님마다 가정 형편을 알지 못했다. 하여 성적통지표엔 매번 빼놓지 않고 학습도구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 사주라는 내용이 꼭 들어 있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4학년 때까지 16색 크레파스는커녕, 12색 크레파스도 더 작은 크레용도 사본 적이 없었다. 미술시간엔 늘 지적을 받았지만 그림을 그릴 때엔 친구한테 잘 안 써서 큼직한 것 하나 빌려서 그리거나 껍질 벗겨지는 한쪽은 까만색, 다른 한쪽엔 빨간색이 나오는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 그림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고 매 학기 그런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용모도 불결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지만 겨울에도 따뜻한 물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는 핑계도 달만 하다만 손엔 때가 덕지덕지 붙었다. 목에도 시커맸을 거였다. 겨울엔 손등도 발등도 쩍쩍 갈라져서 갈라진 틈새로 빨간 피선이 보였다. 갈라지면 물리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그래야 바를 수 있는 약이라곤 ‘멘소래담’뿐이었다. 그렇게 겨울을 나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강가로 데려가 때를 벗기게 했다. 그러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겨우내 찌든 비누도 없이 맹물로 때가 벗겨질 리 없었다. 그럴 때면 맨들맨들한 작은 돌을 골라서 손등이랑 팔이랑, 발등이랑을 박박 긁어 때를 밀어냈다. 피부는 벌겋게 때를 대신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지만 내가 유독 그러했던 모양이었다. 구실을 찾자면 남들처럼 옷을 못 입으니 더 추위를 느껴야 했던 탓도 있었다. 옷을 입는다고 해야 구호품으로 받은 학생복을 기워서 몇 해를 입었다. 기워 입긴 해도 질기긴 한 까만색 교복 윗도리였다. 중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까만색, 그 옷으로 겨울을 나곤 했으니 얼마나 추웠으랴. 다른 아이들도 그랬겠지만 코도 참 많이 나왔다. 하얀 굼벵이처럼 때로는 누런 굼벵이처럼 콧구멍 밖으로 길게 나왔다가 훅하면 터널 같은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코, 첨 더럽게 생활했다. 손수건도 없었다. 코가 너무 길어서 콧구멍 안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때면 팔소매로 코를 쓰윽 닦으면 그뿐이었다. 대신에 코의 흔적을 지우려고 문지르는 바람에 찌든 코의 흔적이 남아 팔소매는 반들반들 왁스를 입힌 것 같았다. 까만 중학생 교복, 잘 맞지도 않지만 걸치고 다녔다고 해야 맞을 각진 교복을 겨울마다 입고 다녔으니 아마도 그런 것을 선생님이 지적한 모양이었다.

 

내게 그런 꾀죄죄한 시절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그랬을 테지만 내가 좀 더 지저분하긴 한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민관식 문교부장관 표창을 받을 때, 선생님이 전날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내 목덜미를 꼬집으시더니 “내일 상 받을 놈이 이게 뭐냐? 내일은 목에 때좀 씻고 오너라!” 하셨다. 그때 문교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당시에 학력평가시험이라고 있었다. 강원도 전체에서 4-6학년 대상으로 교사들을 서로 맞바꾸어 시험 감독을 하게 하여 160점 만점의 시험을 보게 했는데, 그때 나중에 우리 반만 장학사가 와서 재시험을 치루었다. 우리 반 성적이 좋은 면도 있었지만 나는 한 문제만 틀리고 모든 문제를 맞추는 바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장학사가 직접 감독을 나와 다시 치룬 거라 했다. 그걸로 도내에서 다섯 명에게 문교부장관 표창이 나왔는데 내가 받은 거였다.

 

“공부는 아주 잘하지만 용모가 불결합니다.” 이 말은 나에겐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기록이다. 나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동창들 단톡방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더니 즈들끼리 카톡으로 수다를 떠는데 내 이야기를 쓴 친구가 있었다. 그런 대로 성공한 편인 성직자,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섭섭했다. 나를 지칭해 유난스럽게 코가 누렇게 나왔다고. 그 말이 상당히 불쾌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별 의도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나는 창피스러웠다. 무도 잠들었을 시간에 단톡방에서 나온 후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난 아직 인간이 덜 된 것 같다.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마음이 아직은 먼 것 같다. 때 많은 것, 지저분한 것, 누런 코가 나온 것, 그게 죄는 아니지만, 좀 부끄럽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때만큼은 잘 씻고 다닐 것 같다만, 허허헛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때 잘 씻는다. 지금은 글을 쓸 때 역접을 쓰려면 다시 생각하고 쓴다. 앞말과 뒷말이 비슷한 의미의 연접관계가 역접보다 좋다. 세상살이 그런 것 아니랴. 그저 일상이 좋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큼한 일이 주어지느니보다 일상처럼 흐르는 게 좋은 것 같다. 일상이 깨어진 요즘 다시 드는 생각이다. 역접이 아닌 연접으로 표현할 일상들의 이어짐, 소박한 일상들로 살다가 그냥 떠나고 싶다. 소위 쇼킹한 어떤 날이 다가오기보다 밋밋하니 살았으면 싶다. 요즘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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