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7- 운명인 듯 운명 아닌 우연으로
아홉 살은 특별한 나이일까? 어쩌면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일들이 그때에 일어난 것 같다. 아니면 그때 기억이 유난히 잘 났거나. 한때 유행한 <썸>이란 노래에 빗대어 읊어본다면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운명, 운명인 듯 운명 아닌 운명 같은 우연’이랄까. 참으로 묘한 것이 인생이다. 어찌 보면 내 삶을 돌아보면 운명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우연 같다. 비단 나뿐이랴. 대부분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과거의 촘촘한 삶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 하나하나, 그 과정 순간순간이 우연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마치 프로그램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재의 삶도 그렇거니와 앞으로의 삶 역시 나의 몫이 아니라 어쩌면 신이 정교하게 짠 프로그램화된 운명에 달린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말하려면 나의 몫이 없으니, 모든 게 나의 선택의 결과라 말하려면 여기까지 살아온 과정, 지금 여기에 선 나의 삶은 우연이 아닌 것 같으니,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야기인 즉,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된 것도 같고, 시인이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인과응보란 말이 있듯이 어떤 결과든 짚고 또 짚어 보면 그렇게 되도록 정교하게 삶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시인이 된 동기가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랬다. 아홉 살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선생님께서 국어시간에 우리 반 모두에게 시를 쓰라고 시켰다. 제목은 선생님이었다. 시를 배운 적도 없는데 시를 쓰라니까 어떻게 쓸지 몰랐다.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다른 아닌 당시에 소년중앙일보가 학교에 배달되어 오곤 했는데, 한 반에 한 부씩이었다. 그러면 거기에 실린 모든 글을 읽다 싶이 했다. 그만큼 읽을거리가 없었으니까. <소년007> 만화 코너가 하단에 있었던 것 같고, 때로는 아이들이 직접 쓴 동시가 실리곤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글란에 실린 동시가 떠올랐다. 암기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거기에 실린 ‘선생님’이란 시 내용 전체가 떠오른 건 아니지만 이미지는 있었다. 그 이미지를 살려 이렇게 썼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우리 아빠 같아요.
화나실 땐 무서운 호랑이 같죠.
선생님은
선생님은
우리 엄마 같아요
웃으실 땐 하늘나라 천사 같지요.
완전히 나의 창작이라기보다 그 신문에 실린 시의 이미지를 모방한 동시였다. 이 시를 읽은 선생님은 무척이나 칭찬하셨다. 선생님이 신문에 실린 동시를 읽지 못하신 걸까. 이미지는 비슷하나 다른 내용이었을까, 선생님은 그 동시를 손수 여섯 장을 옮겨 쓰셨다. 당시에 교실 뒤편엔 학습게시판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쓴 것은 우리 교실 학습게시판에 붙이셨고, 손수 쓰신 여섯 장은 다른 교실 게시판에 일일이 다니시면서 붙이셨다. 우리보다 한 학년 위인 반은 인원이 유독 많아 두 반이었다. 때문에 우리 학교 전체는 일곱 반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다음주였다. 6학년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에 나를 찾아오셨다. 우리 선생님은 여선생님으로 김성옥 선생님이었고, 6학년 선생님은 서만석 선생님이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그 다음 주부터 당장 방과 후엔 동시반에 들어와 공부하라고 하셨다. 이 선생님께서 동시를 가르치는 반은 5학년과 6학년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졸지에 동시반에 들어가 서선생님께 동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5학년 때엔 홍천군내 백일장에 학교를 대표하여 나가는 기회도 얻었다.
돌아보면 그런 일이 있어서 내가 시인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그저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순수한 내 작품이랄 것도 없는데, 그걸 전혀 죄의식을 느끼거나 한 적이 없었으니, 사기라면 사기고, 표절이라면 표절일지도 모른다. 딱 한 번 읽었을 뿐이라 정확히 기억하고 쓴 것 같지는 않다만.
또한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아부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동시엔 아빠라 적었으니, 그 또한 거짓이었다. 아버지와 엄마, 엄마는 호랑이였으면 호랑이였지, 아버지는 매 한 번 못 드실 만큼 착하기가 천사 이상이었다. 그것도 거짓이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는 천사라 써야 할 것 같았고, 아버지는 호랑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아무 죄 없는 착하디착한 우리 아버지를 호랑이로 표현했다니.
나를 글에 관심을 갖게 만든 그 사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표절이든 아니든 나를 시인으로 이끈 동시라서일까. 동시 또한 적어둔 적도 없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에 생생하다. 어떻게 보면 나를 시인으로 이끈 그 사건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가도, 우연은 우연이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운명으로, 아니면 운명인 듯 운명 아닌 우연한 사건을 동기로 어찌어찌하다 90년도에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니, 그 사건은 내겐 참 다행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다.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동기는 참 중요한 것 같다. 나쁜 일이 아니라면 때로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은 그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으니, 그때 선생님들은 내 인생엔 참 소중한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