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8- 주일학교의 성경 암송시간

영광도서 0 458

무엇인가 평가를 받는다, 준비한 사람에겐 기대와 설렘이 있고, 준비를 못한 사람에겐 경우에 따라서는 두려움이 인다. 학교에서의 시험도 누군가에겐 즐거운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짜증나는 시간이다. 어쩌면 인생이 달려 있다고 믿는 학력고사든 수능시험이든 또는 공무원시럼이든 그런 시험을 앞둔 이들의 경우, 충분한 준비를 한 이는 새로운 꿈의 시간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까마득한 절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동네 어른들의 생일은 물론 제삿날, 아무 기록도 없이 별의 별 것을 다 알고 계셨던 아버지 덕분인지 나는 암기는 잘한 편이었다. 학교에서 암기하면 나는 거침없이 항상 일등이었다. 1968년 12월 5일은 국민교육헌장 선포 일이었다. 그때는 3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그것을 즉석에서 암기하게 시켰다. 그때도 나보다 3년 선배까지 모인 자리에서 내가 제일 먼저 암기해냈다. 그렇다고 상은 없었지만, 그 외에 수업시간에 태양의 아홉 혹성을, 당시엔 아홉 혹성이었으므로, 암기하는 순서대로 건빵을 나누어주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암기하기 전에 제일 먼저 암기하려고 일단 손을 들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어서서 암기했는데, 미처 못 외운 것 같았으나 쉽게 암기할 수 있었고 덕분에 건빵을 제일 먼저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한 암기시간은 교회에서였다. 주일날을 기다린 것은 성경암송시간 때문이기도 했다. 주일날마다 성경암송시간이 있었다. 매주 성경을 암송하되, 항상 다른 구절을 찾아 암기해야 했다. 예를 들어 오늘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십오 절까지 암기했다면, 다음 주엔 그 이후부터 암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곳인 요한복음 삼장 1절부터 암기한다든가 하여 얼마나 많은 절을 암송하느냐를 평가했다. 얼마나 많은 절을 암송하느냐였기 때문에 성경을 펼쳐서 절을 표시하는 숫자 간격이 좁은 곳을 골라 암기했다. 그때 성경은 세로읽기인데, 절 표시는 한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성경을 펼치면 그런 곳을 고르기 쉬웠다. 그러면 교사는 그 명부를 만들어 성경 구절과 절수를 기록했다가 일정기간 합산을 해서 상을 주었다.

 

성경이 없는 아이는 없었다. 집집마다 교회에서 무료로 주었다. 거의가 기드온협회라는 표시가 인쇄되어 있었으니, 믿는 집이든 믿지 않는 집이든 성경 한두 권은 있었다. 그 성경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사용했다. 아이들이 교회에 가져갔다가 어른들 시간이 되면 어른에게 인계하는 식이었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주일마다 성경구절을 암기하여 갔다. 새로운 구절을 찾되 절이 짧은 성경들을 찾아서 암기했다. 마태복음 1장의 계보는 물론 창세기에 나오는 계보, 짧고 암기하기 쉬운 구절들을 최대한 찾아 암기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성경암송이라면 나보다 선배들보다도 내가 압도적으로 많이 암기했다. 작은형도 나한테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학용품을 거의 교회에서 타서 쓸 수 있었다. 요절상을 받거나 모범상을 받거나 하여 학용품은 그걸로 해결했다.

 

대신에 엄마한테 학용품 살 돈은 받아냈다. 그 돈은 학용품을 산다고 하고는 만화책을 빌려보곤 했다. 그때 학교 가는 길에 외솔배기를 넘어서 백여 미터 내려가면 군너미로 가는 길과 학교 가는 길로 나뉘는 곳 물굽이가 있었고, 그것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선 학용품은 물론 과자도 팔면서 만화책도 팔거나 빌려주곤 했다. 5원이면 만화책 한 권을 살 수 있었고, 빌리면 세 권을 빌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만화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니, 교회는 내게 성경구절을 암기하도록 도운 동시에 만화책을 많이 읽도록 도운 셈이었다.

 

그렇게 빌린 만화책은 수업시간에 몰래 책상 아래로 보았지만 선생님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그렇게 보면 나는 겉으로만, 남 보기에만 모범생이었고 실제는 위선적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나, 지금은 모두 추억의 풍등이 되어 공중에 떠도는 것 같다.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어쩌면 철몰랐거나 무지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는 어느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들, 점점 잊혀져가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누군가의 기억에서도 찾지 못할 일들인 듯하여 아쉽다. 불편하여 더 정겨운 그 시절 다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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