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62- 왼쪽 검지에 얹힌 상처의 추억

영광도서 0 482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들은 모두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들은 각각 그럴만한 곡절이 많다. 한 사람의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얼핏 보면 저 사람은 고생하지 않고 산 것 같다, 저 사람은 고생 많이 한 것 같다, 마치 얼굴에 쓰인 것 같지만, 누구의 삶이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숨어 있으랴. 자잘하니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돌아보면 삶이란 기구하다 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다. 그 모두가 어디엔가 영향을 미치며 한 사람의 삶을 이룬다.

 

곡절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아홉 살 때 낫을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을 엄청 베었다. 앞마당 외양간 앞에서 소나무 등걸에 달린 솔개를 낫으로 따려했다. 왼손으로 등걸을 잡고 오른손에 든 낫으로 힘차게 솔개를 내리찍는다고 찍었는데, 그만 왼손 검지손가락 중간 마디 부분을 찍고 말았다. 동시에 피가 위로 솟구쳤다. 손가락이 너덜거렸다.

 

마당 저편에서 놀던 작은형이 달려왔다. 손가락에 피를 멈추게 하려고 작은형에 왼손을 꼭 잡으라고 했지만 피는 계속 쏟아졌다. 작은형이 외양간에 연결된 부엌으로 날 데려갔다. 아궁이에서 재를 긁어내어 손가락에 발라주었다. 그럼에도 피는 계속 흘렀다. 내가 찍은 것이라 아픈 줄도 몰랐다. 피가 멈추길 바랄 뿐이었다.

 

작은형이 이번엔 뒤란으로 데려갔다. 뒤란의 여기저기를 뒤져서 등유 병을 찾아냈다. 언젠가 엄마가 상처를 입었을 때 등유를 상처에 부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몰래 찾아낸 작은형이 내 손가락에 부었다. 그럼에도 피는 멎지 않았다.

 

어딴 기척을 느꼈는지 엄마가 두란으로 향한 안방 문을 여셨다. 뭐하는 것이냐며 문을 연 엄마는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말씀이 없으시더니 내 이마에 꿀밤을 먹이시더니, 왼손을 꼭 쥐게 다시 잡게 하시고는, 급히 맨발로 뒤란으로 나오시더니 가시선인장 한 줄기를 뚝 꺾으셨다. 그리곤 그것을 돌로 짓찧으셨다. 선인장은 코처럼 진득진득해졌다. 그것을 내 손가락에 척 붙이시곤 광목을 죽 찢어서 내 손가락을 두툼하게 싸매셨다. 그러자 용케도 피가 멎었다.

 

아침에 다시 손가락을 연 엄마는 갑오징어 뼈를 갉아서 가루로 만들어 상처에 뿌린 후 싸매주셨다. 그렇게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놀라시면서 나를 교무실로 데려가셨다. 그리곤 손가락을 폈다 구부렸다 하게 시키셨다. 다행히 손가락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선생님은 손가락 상처에 솜에 빨간 약을 적셔서 손가락에 잘 발라주시곤 거즈로 손가락을 전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싸매 주셨다. 다음날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려가 상처를 소독해주시고 다시 싸매주셨다. 선생님 덕분이었을 터다. 비록 왼손 검지에 툭 튀어나온 상처는 남았지만 손가락은 잘 움직였다.

 

손가락 상처는 늘 나에겐 부끄러움의 대상이긴 했다, 남들과는 다른 모양의 손가락인지라 결혼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남들 앞에선 애써 손가락을 감추곤 했다. 혹시 불구자 취급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대략 보면 알아볼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손가락을 의식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한 번은 이 손가락이 쓸모가 있었다. 종로서적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를 잘 따르던 한 여직원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선생님, 엊그제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마음이 아파요. 선생님은 시인이시니까 좋은 말씀 한 마디 해주세요. 그러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라며 한 마디를 부탁했다. 말 한 마디가 무슨 도움이 되랴만 순수한 영혼에겐 한 마디도 큰 힘이 될 터였다. 그때만 해도 순수한 마음의 나 역시 좋은 말을 찾으려 잠시 고민했다. 그때 내 왼손 검지가 보였다.

 

“이 손가락 보이지?”

 

“네”

 

“아플까 안 아플까?”

 

“다쳤을 때는 무척 아팠을 테지만 지금은 아프지 않겠는데요.”

 

그녀의 대답에 나는 “그래 이 상처, 생채기로 있을 땐 아리고 쓰리지만 흔적만 남은 상처가 되었을 때는 더는 아프지 않아. 그때를 기억할 뿐이지 아프지는 않더라고. 사랑도 그런 것 아닐까. 이별할 때는 생채기처럼 후벼 판 듯 아프지만 세월이 흐르면 상처처럼 고운 추억으로 남을 거야.”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은 어디메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러고 보면 손가락 하나하나에도 기억이 남아 있다. 평범한 일들, 일상들은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흔적이 남은 것은 잊히지 않는다. 흔적에는 필연적으로 사건이 숨어 있으니, 세월이 흐르면 사건도 일상에 묻혀 고만고만해지지만 다시 들추면 사건이요 추억으로 남는다. 작은 손가락 상처 하나는 이렇게 여러 컷의 영상을 내게 보여주면서 아침을 지난다. 그때의 생생한 아스라함도, 끔찍한 공포도, 아린 아픔도 더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이미지는 여전하다. 모든 감각적인 아림이나 쓰라림을 세월에 묻은 채, 정겨운 그림만 남겨준다. 곡절이라면 곡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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