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66- 신비스러운 중학생 누나

영광도서 0 491

여자는 신비롭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신비롭다. 때로는 이 세상사람 같지 않다. 다른 별나라에서 온듯하다. 어려서는 어린 대로 신비스러운 대상이 있고, 사춘기 때는 사춘기대로 신비스러운 대상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고 나이 들어서도 그러한 듯하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신비스러운 사람이 있듯이, 남자에겐 시기에 따른 신비스러운 대상이 있는 듯하다. 그런 맛에 삶은 살만할 테지만, 여자는 신비롭다.

 

신비로운 여자,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신비로운 여자를 보았다. 중학생 누나였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중학생 교복을 입은 여자를 보았다. 물론 중학생 교복을 입은 사람은 남자라도 신기했다. 위 아래로 검은 각진 옷에, 각진 모자, 특히 각진 모자, 둥근 앞 창 위로 앞면엔 반짝반짝 빛나는 가운데 中자가 금빛을 내며 붙은 모자를 쓴 중학생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그런 중학생들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다 신작로로 멋지게 행진하듯 서너 명이 지나가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곤 했다.

 

우리 동네엔 중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리가 다른 도관리에 있는 내촌중학교에 다녔다. 내촌중학교에 가려면 가족고개를 넘어 족히 8킬로미터는 다녀야 했다. 중학교에서 오려면 그 까마득한 고개를 신작로로 넘어야 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았을 때였으므로 그 길을 중학생들은 걸어 다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중학교 있는 면소재지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해야 했으니 중학교 보내기도 빠듯했던 시절이라 대부분 걸어서 다녀야 했다. 덕분에 그 멋진 멀리서나마 또는 어쩌다 가까이 지나가는 중학생을 볼 수 있었다.

 

옆에서 직접 중학생을 본 것 역시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우리 동네는 가족동으로 가족 1동과 2동이 있었는데, 1동에서는 한 명도 없었고, 2동에서 드디어 한 명이 나왔다. 신작로로 학교 가노라면 중간쯤에 물굽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신작로에 좌측으로 딱 붙은 집, 가게집으로 만화책은 물론 과자며 학용품을 함께 파는 집이 있었다. 규식이 형네였다. 바로 규식이 형이 내가 처음으로 본 중학생이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전거를 가지고 있던 형이기도 했다. 내겐 3년 선배였는데 3년 후면 나도 그렇게 멋진 검은 교복을 입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그때 품었다.

 

그해에 역시 처음으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처음 가까이서 보았다. 1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 딸 숙자 누나였다. 다른 여자 아이들보다 얼굴도 희었고, 고왔던 누나였기에 다 했다.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누나의 집에 가려면 우리 집 앞을 지나야 했다. 물론 가족고개를 넘어서 신작로로 가면 우리 집 앞을 지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고개를 넘어 오기도 힘들 텐데 그렇게 돌아가려면 더 힘이 들 터였다. 당연히 우리 집 앞을 지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누나와 같은 동기동창인 선배들이 문제였다. 딱 그 누나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시간이면 그 형들이 우리 집으로 왔다. 내 또래 또는 나보다 1년 후배 병구, 2년 후배 명기, 그리고 내 동창 용복이도 모였다. 동네 형들은 중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그들 중 특히 용복이 형 용선이 형이 제일 짓궂었다. 형들의 무리엔 작은형도 속했고, 옆집 윤구형도 속했다. 그 형들이 열네 살 때였으니 실제로야 뭘 알까마는 같은 나이에 그 누나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흑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형들이 우리를 꼬드겼다.

 

우리 집 앞길은 집에서 20여 미터 거리에 있었는데, 그 길로 숙자 누나는 지나갈 참이었다. 우리 집 구조는 앞마당이 있고 앞마당과 길 사이엔 광으로 쓰는 사랑방이 있었는데, 사랑방에 숨어서 밖을 내다보건 그 형들은 숙자 누나가 집 앞을 지나갈 즈음이면 우리를 구슬리거나 우리를 협박하여 그 누나를 놀려주라고 시켰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도 신비스럽게 보이는 누나이기도 한 터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하여 우리 무리 서넛은 누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러면 누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우리를 따라왔다. 그러면 우리는 후다닥 옥수수밭 속으로 도망을 쳤다. 그러면 더는 따라오지 않고 가는 길을 갔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누나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그러면 누나는 울면서 그 자리를 재빨리 도망치곤 했다. 그게 재미있어서였는지, 형들은 우리한테 그런 악역을 맡겼다.

 

그런 놀리기는 여러 번 반복되었다. 때문에 누나는 가급적 우리 집 앞으로 지나지 않고, 멀찌감치 힘이 들어도 신작로로 돌아서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아침 학교 가는 길에 그 누나의 할머니가 일찌감치 하천 건너에서 밭일을 하시다가 우리가 학교 가는 걸 보고 재빨리 따라오셨다. 늘 허리를 굽게 하고 다니시던 할머니는 우리를 붙잡아 세우고는 우리가 한 짓을 따끔한 말로 문책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한 짓이 형들이 시켜서 한 일이었다는 말로 혼은 안 났지만 다시는 그런 짓을 하면 혼날 줄 알라는 할머니의 경고를 듣고 나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형들은 우리에게 그 못된 짓을 시키지는 않았다.

 

비록 3년 연상의 누나였지만 누나의 모습은 신비로운 대상으로 각인 되었다. 세상의 여자가 아닌 듯한 아름다운 모습, 신비로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았다. 형들이 시켜서 한 못된 짓이었지만, 어쩌면 천사와 같은 범접하기 힘든 대상을 향한 몸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무지가 악이란 말에 공감한다.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어떤 대상을 향한 죄는 상대를 괴롭게 하는 일이니, 부지불식간에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말아야겠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다시는 중학생 누나와 같은 신비로운 여자를 만날 수는 없을 터이다. 나이 들어 오염될수록 순수한 마음도 사라지고, 신비로움도 사라질 테니까. 그렇다고 순수하다는 이유가 면죄부는 아니다. 어쨌든 누군가는 괴로움을 당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엄청난 나쁜 짓임을 안다. 폭력이었음을 깨닫는다. 비록 우리가 어리긴 했지만 누나는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얼마나 두려운 마음으로 지나갔을지, 얼마나 귀찮았을지 그때는 짐작도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는 함께 늙어갈 누나, 진심으로 용서를 빈 적도 없으니,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나마 이 아침에 용서를 빌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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