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5- 새들을 잡는 재미있는 날의 추억

영광도서 0 499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하얀 속에서....”

 

이렇게 무더운 날이면 하얀 겨울이 그립다. 어른이 되어 맞는 겨울이 아니라 철모르는 시절의 아이들이 맞는 겨울이 그립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겨울이 그립다.

 

어린 시절 나의 고향,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쌓이고 추은 날이면 밖에 나가 놀 수도 없었다. 그런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안방 한가운데 놓인 화롯가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마치 빨간 혀를 날름거리듯이 위협적이던 화롯불은 불과 한두 시간이면 불기가 남은 재로 변했다. 물론 뱀 대가리처럼 생긴 인두로 안을 쑤석거리면 그 안에 뜨거운 불길을 감추고 있긴 했다. 그때쯤에 방구석이라든가 갈대자리 밑에 숨은 옥수수 알이나 콩을 찾아내어 갈대자리 모서리에서 날카로운 갈대 하나 잘라서 꼬챙이 삼아 그 끝에 옥수수나 콩을 끼워 화롯불에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콩이나 옥수수를 구워 먹으면서 문창호지가 발라진 문 한가운데에 단 손바닥 수첩만한 크기의 한사각형의 유리를 통해 안마당을 살핀다. 원래 이 유리는 평소엔 지나가는 사람이나 방문객을 알아보기 위해 달아놓는 것인데, 겨울이면 새를 잡기 위해 사용한다. 새를 잡으려면 안마당을 엔 새잡이 틀을 설치해 놓는다. 주로 거름을 지게에 달아 나를 때 쓰는 소쿠리를 이용한다. 싸리나무로 만든 소쿠리를 벌리면 거의 타원형의 모습이다. 벌린 소쿠리 아랫부분에 종이를 깔고 새들이 좋아할 조나 수수를 뿌려놓는다. 벌린 소쿠리 사이에 가운데에 줄을 매단 막대기를 받친다. 막대기에 매단 줄을 늘여서 문틀 중에 한 곳에 구멍을 내고, 창호지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게 만든 곳으로 줄을 끌어들인다. 그러면 줄 한쪽은 안마당 새잡이용 틀 막대기에 묶여 있고, 한 끝은 방안에 있다. 안에서 콩이나 옥수수를 구우면서 가끔 유리로 내다보다가 새들이 소쿠리 안에서 꽤 여러 마리가 모이를 쪼는데 여념이 없다면 재빨리 줄을 당긴다. 그러면 새들이 미처 도망쳐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힌다. 그제야 밖에 나가서 새를 생포하여 나중에 새 구이를 해 먹는다.

 

겨울이면 문이 많이 내려서 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울 때면 사람 사는 집으로 모여들었으니 겨울에 아이들 놀이로는 무척 재미를 주었다. 그렇게 잡힌 새들은 조로 박새들이거나 누리끼리하면서 좀 큰 콩새정도였다. 참새는 제일 많았지만 녀석들은 얼마나 약삭빠른지 잡힌 적이 없었다.

 

콩새는 의외로 잘 잡혀서 새덫에 잡히지 않고도 창애에도 잘 접혔다. 창애는 다래나무로 만들었다. 다래나무는 덤불을 이루며 사는지라 유연했다. 때문에 다래나무를 3-40센티미터 정도 크기로 둘을 잘라 같은 각도의 활모양으로 휜 다음 아래 위가 잘 맞게 끈으로 고정시킨 다음, 먹이를 단 중간 굄 장치를 새가 쪼면 그것이 당겨지면서 윗 나무가 탄력 있게 아래 나무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새의 목을 누르게 만들어 잡는 원리였다. 이 새 창애에는 오로지 까치나 콩새만 잡혔다. 어쩌다 비둘기가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시골마을에 눈 내린 날은 아주 조용한 듯 역동적으로 흘렀다. 아니 눈 내리는 날이었다. 눈은 어찌나 많이 왔던지 나무로 만든 넉가래로는 눈을 치울 수도 없었다. 삽으로 눈을 퍼서 던지면서 이 집과 저 집을 잇는 길을 뚫었다. 눈 터널을 이룬 듯한 길이 뚫리면 동네 친구들도 놀러 와서 안마당의 새 틀을 감시하면서 함께 새 잡기를 즐겼다. 그렇게 서너 차례 새를 잡는 사이 잡은 새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 화롯불은 거의 불씨마저 죽어갔고, 그때쯤엔 아버지가 다시 부엌에서 부삽으로 불씨를 더 가져다가 화롯불 속에 넣어주시곤 했다.

 

하얀 눈으로 온통 덮인 시골마을, 아무것도 살아 있는 것이라곤 없는 듯한 시골 마을, 그럼에도 아이들의 새 잡기 놀이가 살아 있었고, 살겠다고 새덫에 드나들며 조나 수수를 쪼아대는 박새랑 참새랑은 아직 살아 있었다.

 

녀석들도 참 귀한 생명체이건만 그때는 철이 없어 녀석들을 생명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놀이의 대상이었고, 고소한 먹거리였을 뿐이어서, 녀석들이 잡히면 너무나 신나서 쾌재를 불렀다. 무척 신났다. 겨울이면 눈이 그치면 스키나 썰매를 즐겼지만, 눈이 내려 외출이 어려울 때면 이렇게 화롯불 가에 둘러앉아 새를 잡으면서 보내는 때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물론 그때 철없어서 새를 그렇게 잡던 것을 반성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작은 유리로 안마당을 살피던 때, 귀엽게 생긴 작은 새들이 모이를 쪼면서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감시하면서 좀 더 좀 더 많은 새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긴장을 늦추지 않던 순간, 잔뜩 호기심으로 새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바라보다 재빨리 줄을 당기는 재미를 느끼던 순간, 그 짜릿한 순간들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마음의 색깔로 따지면, 지금은 온통 여러 색깔로 얼룩진 오염된 마음이라면, 적어도 그때는 겨울을 닮아, 아니 하얀 눈을 닮았을 것만 같은 그 마음을 하루라도 가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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