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6- 토끼몰이의 추억

영광도서 0 581

고기 맛을 거의 볼 수 없었던 시절, 토끼를 잡으려 무진 애를 썼던 내 잔인한 면은 궁여지책의 한 방편이라고 합리화하련다. 지금은 거리에 널린 비둘기를 봐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구미가 당기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토끼가 지나가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적엔 육류를 먹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드물었다. 닭을 길러야 돈을 위해 길렀기 때문에 집에서 잡아먹는 적은 거의 없었다. 닭이 알을 낳아도 모아두었다가 부화를 시키거나 5일장에 내다 팔아 돈과 바꾸었다. 때문에 어쩌다 어른 생일 날 닭을 잡아야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는데, 무국을 끓여서 거기에 갈기갈기 찢은 고기를 위에 올려 섞은 고깃국이 거의 전부였다. 때문에 겨울이면 꿩을 잡거나 산토끼를 잡는 것은 재미를 넘어 고기 맛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산토끼를 잡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다가 토끼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올무를 놓는 방법이었다. 토끼는 먹이를 채취하는 곳에서는 길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조금씩 이동할 때면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토끼가 뻔질나게 지나는 길목에 전봇줄이나 가는 철사로 만든 올무를 놓았다. 그렇게 놓아두면 하루나 이틀 지나서 가 보면 토끼가 올무에 걸려 죽어 있는 때가 있었다. 겨울에 바싹 언 산토끼를 잡은 날은 나무를 하는 내내 기분이 무척 좋았다.

 

올무를 만드는 방법은 철사나 전봇줄을 구한다. 줄 끝에 훌쳐질 수 있는 홈을 만들고 그 안으로 줄을 넣는다. 둥근 원 모양으로 올무를 만든 다음 토끼가 다니는 길목에 잘 위장하여 놓아둔다. 평소와 달리 넓었던 길은 둥근 원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을 만큼 좁혀져 있으나 단순한 토끼는 그걸 기억 못하고 그 길로 지난다. 여기 저기 원 모양이 살도록 살짝 지지하던 썩은 나뭇가지들은 토끼목에 끌려가는 올무의 탄력에 맥없이 무너지고 토끼는 올무를 매단 막대기를 그대로 끌고 가다 막대기가 양쪽으로 걸리면 더는 가지 못하고 그대로 삶을 마감하여 사람들의 입에 고기 맛을 선사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그야 말로 토끼몰이다. 토끼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않은지, 습성이 그런지 거의 같은 길로 다닌다. 하여 눈이 잔뜩 쌓인 날 산에 오르면 토끼가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자주 다니는 길이 있어서 발자국이 촘촘히 찍혀 있다. 하냔 눈 위에 동글동글한 똥도 제법 굴러다닌다. 이런 길을 발견하면 올무를 놓기 좋은 길목을 찾아 올무를 놓고 토끼몰이를 시작한다. 발자국을 찾아 추적하다 토끼를 발견하면 토끼 발자국을 따라 계속 추적한다. 그러면 원이 길긴 하지만 토끼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그 길로 가다가 딱 걸린다. 물론 올무를 한 개만 놓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면서 좋은 길목 곳곳에 여러 개를 놓는다. 그러면 그 중에 하나엔 걸리게 되어 있다.

 

워낙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토끼가 돌아다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토끼가 숨을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주로 보득솔 밑에 숨어 지내는데, 그런 곳에 가서 눈 위를 막대기로 두드려 눈을 털거나 하면 토끼는 놀라서 튀어나온다. 일단 그냥 잡을 수 있다면 더 좋기에 토끼를 재빨리 추격한다. 운이 좋게도 토끼가 낮은 쪽으로 몰리면 올무를 놓지 않고도 잡을 수 있다. 앞발이 짧기 때문에 내리막을 토끼는 잘 달리지 못한다. 때문에 놈들은 본능적으로 오르막으로 달리는 습성이 있다. 이런 날은 한둘이 토끼몰이를 하기보다 동네 아이들이 여럿 모여 토끼몰이를 한다. 그렇게 하여 토끼 한 마리 잡으면 무를 잔뜩 넣어 하루 잔치를 벌인다.

 

토끼 사냥은 단순하게 재미나 놀이는 아니었다. 먹거리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무척 날렵한 편이었다. 덕분에 혼자서 토끼를 생포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열다섯 살 겨울이었다. 집 건너편에 양지쪽에 땔나무를 하러 갔다. 땔나무를 채취하다가 놀란 토끼가 튀어나오는 걸 순간적으로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재빨리 토끼를 따라가다가 무쇠 낫으로 잽싸게 토끼목을 눌렀다. 토끼는 반항하다가 내 손에 꼼짝없이 잡혔다. 그럼에도 나무를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토끼를 칡으로 올무를 만들어 목에 걸어 조인 다음 지게에 매달아 놓았다. 나무 한 짐을 하고 보니 토끼는 숨을 거둔 후였다. 그렇게 토끼를 잡은 덕분에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한없이 여려 보이는 나였지만 그런 잔인한 면이 내 안에 있었다.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지나다 비둘기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라도 잡으려고 돌을 던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잡아본 적은 없었다. 산비둘기들은 사람을 무척 경계하기 때문에 사람의 기척만 보면 달아나기 때문에 잡기가 어려웠다.

 

어렸을 적 돌아보면 함께 놀던 아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함께 토끼몰이하던 아이들, 그들이 그립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든 그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티 없이 다른 생각일랑 없이 무엇을 하든 그것에 집중하던 순순한 날의 아이들로 기억하고 싶어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 그날의 흑백사진 같은 영상들이 다시는 재생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지. 너희들도 나도 세월 속에 나이 들어가지만 치열한 그날의 토끼몰이는 변함없는 영상으로 남아 있겠지. 추억이라면 추억으로, 그것이 삶의 투쟁이든 놀이이든 지난 것은 모두 고운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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