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9- “개는 훌륭하다!”

영광도서 0 489

개는 훌륭하다, 하긴 ‘개 같은 놈’이란 욕을 사람들은 자주한다만, ‘개’라는 말을 앞세운 인간이 질러대는 욕도 많다만 예로부터 개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존재로 인정한다. 따지고 보면 개는 인간보다 나으면 나았지, 인간보다 못한 면은 거의 없다. 인간처럼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고 모든 걸 보여주니까 그걸 오히려 나쁘게 인간이 인식할 뿐이다. 주인에게 온갖 애정을 주고도, 충성만 바치고도 주인을 위해 팔려가거나 버림받는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개는 훌륭하다>를 즐겨본다. 개를 좋아하기도 그렇거니와 개통령이란 칭호를 받는 강형욱 조련사의 인간미를 좋아해서이다. 개를 향한 그의 애정, 마치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 애정 어린 마음으로 문제의 개를 대하는 그를 보면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개도 사람과 다를 것 없이 애정을 먹고 사는 존재란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그의 개를 향한 애정, 문제아를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교육 시키는 심리상담사처럼 그는 개를 잘 교육시킨다.

 

이 프로그램, 이경규와 몇몇 여자 연예인이 함께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시골에서 기르던 개들이 떠오른다. 물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개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개들, 이름도 갖지 못한 개들이다. 다 자라면 “워리 워리”라고 부르고, 강아지일 적엔 “여여여여여”라고 불렀던 개들, 누구네 개 할 것 없이 같은 이름을 가졌던 온 동네 개들, 모두 대동소이해서 특징이라곤 솔직히 떠오르지 않지만 우리가 길렀던 개와의 몇몇 상황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그랬다. 온 동네 개들은 이름이 같았다. 이름은 같아도 개들은 용케도 주인만 따랐다.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 대어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개들은 동네 개들과 어울려 싸돌아다니다가도 때가 되면 반드시 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주인을 그렇게 잘 따랐다. 주인이 집을 떠났다가 돌아올라치면 벌써 2킬로미터 밖에 오는 것을 용케 알고 벌써 마중을 나와 꺼리를 치며 반겼다. 먹을 것을 충분히 주지는 못해도, 맛 잇는 것을 주지는 못해도 개들은 주인만 잘 따랐다. 개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들이 먹고 버리는 고기 뼈라든가, 음식 찌꺼기, 아니면 걸죽한 옥수수 죽이 전부였다. 대신에 개들은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길가나 밭에 싼 똥을 헤집어 먹었다. 그야말로 똥개였다.

 

한 번은 동네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까지는 1킬로미터는 남았을 것 같은데, 우리 집에서 기르던 누렁이가 벌써 마중을 나왔다. 내가 유난히 개를 좋아하는 걸 녀석도 알고 있었는지라 멀리서부터 신이 나서 나를 반겼다. 문제는 녀석의 입 주변 삐죽삐죽한 수염에 누런 똥이 묻어 있는 거였다. 사람이 싼 똥은 시간이 좀 지나면 겉은 거무스름하게 변하지만 조금 파헤치면 누런데, 녀석은 어디서 그걸 먹다 달려온 참이었다. 반갑다고 겅중겅중 내게 뛰어오르는데, 똥이 묻을까봐 녀석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똥이 묻을까봐 오지 말라고 몸짓 발짓으로 막는데도 녀석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려들어 무척 곤란했다.

 

동네 개들의 역할도 같았다. 인심이 좋은 마을이라 개들이 집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개들은 단순히 길러서 팔아서 돈을 만드는 수단에 이용 되는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개들은 어느 집 개든 모두 밖에서 길렀고 방에 들어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어쩌다 한 번 방에 들어올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마을에선 갈대자리를 깔았다. 당시엔 기저귀가 귀했던 시절이라 아기들이 잠을 자다 갈대자리에 똥을 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기가 똥을 싸면 똥은 갈대자리 틈새로 새들어갔다. 아무리 걸레로 잘 닦으려 해도 똥은 갈대 틈새에 박혀 잘 닦이지 않았다. 그럴 때에 개는 한 번씩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불려 들어간 개는 갈대자리 틈새에 박혀 있는 누런 똥 조각들을 용케도 깨끗하게 찾아먹곤 했다.

 

개와 나, 나는 개를 무척 좋아했다. 개도 주인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잘 알아서 따르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나는 개에겐 아주 인기가 있었다. 내가 먼 데로 가지 않는 한 개는 나만 따라다녔다. 밭에 김을 매러 가도 나를 따랐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산에 따라왔다. 내가 일을 마치고 일어날 때까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할 때면 지게 옆에 누워서 내가 나무 한 짐을 하기까지 기다렸다가 따라와서 때로는 든든한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 개든 그렇게 오래 함께 하지는 못했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개는 눈물을 주고 팔려갔다. “개 팔아요!”라고 외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면소재인 도관리에서 가족고개를 넘어오는 오토바이 소리, 그 소리는 개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동네 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의 눈과 개들의 눈에 눈물을 주었던 개장수는 가끔 신작로로 공포스러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넘나들었다. 그때쯤이면 용케도 개들은 어디론가 숨어서 짖지도 않았다. 눈치를 챈 나도 때로는 개를 데리고 산에 숨어 있다가 오토바이가 지나간 다음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어른들이 아니었다. 개장수가 오기로 한 날이면 미리 평소보다 맛있는 음식을 개한테 주면서 재빨리 밧줄로 묶어 두었다. 그날은 개가 팔려가는 날이었다. 신작로에 세워진 개장수의 오토바이, 사방이 철망으로 만들어진 개집, 개의 감옥이 대기하고 있었다. 개장수는 개의 목에 줄을 걸어 데려갔다. 개는 운명을 알았음인지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내게 도움을 청하듯 애절한 눈길을 보냈지만 내가 결정할 수는 없었다. 애절한 눈빛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내는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오토바이 위 개장에 다른 개들과 함께 갇혀서 나를 바라보던 애절하면서도 슬픈 눈빛, 눈가의 털에 젖은 눈물,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누렁이, 이름 하나 지어줄 생각도 못해서 이름 하나 갖지 못하고 떠난 누렁이, 아니 누렁이들, 눈물 고인 누렁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내리는 빗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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