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3- 엄마손 칼국수

영광도서 0 573

엄마손 칼국수, 수년 전만 해도 엄마손 칼국수란 간판을 단 국수집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칼국수란 역시 손맛이라 손으로 반죽을 치고, 칼로 숭덩숭덩 썰어서 말렸다가 끓여 먹어야 제 맛이다. 말 그대로 엄마손 칼국수, 엄마란 말이 들어가 더 맛이 있는지 몰라도 가끔 엄마손 칼국수가 먹고 싶은데, 요즘은 그런 칼국수집이 거의 안 보인다.

 

날 궂은 날이면, 들에 나가 일을 할 수 없으면 쉴 법한데도 엄마는 그런 날일수록 더 바쁘셨다. 엄마는 그런 날이면 밀가루 반죽을 치셨다. 미리 칼국수를 만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손수 반죽을 하여 칼국수를 만들어 말려 놓으면 언제든 끓여 먹기 쉬워서였다. 물론 수제비국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지만, 같은 양의 밀가루면 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 훨씬 밀가루가 적게 들었다. 밀가루로 가장 양을 늘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칼국수라서 틈 날 때면 엄마는 가끔 밀가루 반죽을 치셨다.

 

나 살던 곳은 지대가 높아서인지 밀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호밀 농사는 그런 대로 잘 되어 호밀을 심었다 수확한 후 메밀을 심는 이모작을 하긴 했다. 그러나 호밀을 가지고 어떤 음식을 만들든 맛이 없었다. 때문에 호밀 농사는 지어서 엿을 고거나 술을 빚을 때 쓰는 질금을 만드는 데만 사용했다. 그러니 밀가루가 귀했다.

 

밀가루는 오일장에 가서 사와야 했다. 밀가루 한 포대에 22킬로그램, 그것 한 포 사오면 무척 뿌듯했다. 그때는 대한제분에서 나온 흰곰이 그려져 있는 곰표 밀가루였다. 종이부대인데 하얗고 조금 굵은 실로 입구를 꿰맨 포대를 처음에 끝을 잘 찾아서 풀고 당기면 신기하게 좍 풀렸다. 그 안엔 하얀 밀가루가 가득 들어 있어서 흐뭇했다. 옥수수와 감자가 주식인 마을에서 밀가루 음식은 무엇을 하든 별식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는 끓는 물에 밀가루를 질게 만든 다음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게 간단하고 쉬웠다. 생배추든 김치든 길게 죽죽 찢어서 무쇠 솥 소당에 세 줄기를 펼쳐놓고 묽은 밀가루를 부어서 둥글게 배추줄기를 덮어 익히면 엄마표 김치부침개가 되었다. 흰 색깔의 부침개에 무늬로 박힌 배추줄기,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당겼다.

 

우리 형제들 생일이면 엄마는 술빵을 만드셨다. 밀가루를 풀어서 적당히 반죽을 한 다음 밀주로 담근 막걸리를 섞어서 양재기에 담으셨다. 반죽이 담긴 양재기를 비닐로 덮은 다음 이불을 씌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죽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빵을 만들어 먹으려면 밀가루가 제법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 생일에만 엄마가 특별식으로 빵을 만들어주셨다. 그날은 술빵에 쌀밥 한 그릇 그리고 미역국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엄마표 밀가루 음식은 칼국수였다. 급할 때는 손쉽게 수제비국을 끓이셨다. 이 때는 끓는 물에 적당히 반죽을 해서 장국 끓이듯 펼펄 끓는 장국에 반죽을 친 것을 두덕두덕 뜯어 넣으면 되었다. 반죽에 그다지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칼국수를 만들려면 시간도 더 들여야 했고 정성도 더 들어야 했다. 수제비 반죽에 비해 아주 물을 조금 붓고 반죽을 쳐야 했다. 거의 굳다 시피해도 나중엔 질어서 반죽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거의 물기가 없다시피 할 만큼 된 반죽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반죽을 한 다음엔 홍두깨로 미는 작업을 해야 했다. 딘 반죽이라 홍두깨로 미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그러면 처음엔 작은 반죽이 점점 펴져서 둥근 원탁만큼이나 큰 보자기모양으로 변했다. 여기에 밀가루를 휘휘 뿌린 다음 썰기 좋게 접은 다음 칼로 썰면 되었다.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려면 제법 시간과 정성이 들어야 했다.

 

엄마는 날 궂은 날 칼국수를 만드셨다. 물론 그날은 칼국수를 끓여 먹는 날이었다. 그날 치 외에 더 많은 양을 그렇게 만드셨다. 그날 먹을 것을 제외한 썬 칼국수는 커다란 보자기에 골고루 펴서 말려서 두었다가 나중에 끓여서 먹으면 되었다. 칼국수를 만드실 때면 끝 부분은 다 썰지 않으시고 우리한테 주셨다. 그것은 칼국수용이 아니라 구워서 먹으라는 신호였다. 잘 반죽된 썰지 않는 끝부분을 화롯불에 구워먹으면 노릇노릇하니 아삭아삭 소리를 내면서 씹히는 게 참 별미였다.

 

날 궂은 날은 그런 별미와 함께 엄마손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먹는 밀가루 음식, 참 부드럽고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만큼 많이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밀가루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건 역시 엄마손 칼국수였다.

 

밀가루 반죽을 치시는 엄마, 반죽을 홍두깨로 밀어서 펼치시던 엄마, 드디어 완성된 재료를 겹겹이 접으신 엄마, 일정하게 칼로 썰어 신기하게 거의 같은 크기의 국수발을 만드시던 엄마, 그리고 다 썰지 않으시고 끄트머리 부분을 넉넉하게 남겨 구워먹으라고 주시길 기다리던 우리 형제들, 한 폭의 동양화처럼 떠오른다. 밀레의 <만종>에 버금가는 그림일 것 같은 풍경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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