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6- 뱀 잡아 돈으로 바꾸던 날

영광도서 0 477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대목은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했듯이, 세상의 모든 가정들 대부분은 보편적으로 살아간다. 물론 더 들어가 보면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론 행복한 듯해도 실제로는 불행한 가정도 있고, 겉이나 속이나 행복한 가정도 있다. 어쩌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 나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삶을 그런 거려니 받아들이며 사는 데 있을 테니까.

 

가족은 가족이었다. 나 열네 살, 작은형 열일곱 살, 나도 작은형도 돈이 생겨도 돈을 관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모든 돈은 엄마가 관리했다. 물론 그때 나나 작은형이나 스스로 돈을 만들 힘은 없었다. 농촌이란 게 돈을 만들려면 봄에 씨앗을 뿌려 결심을 거두어 그것을 팔거나 아니면 남의 집 품을 팔아서 품값을 받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작은형도 나도 남의 일을 할 나이가 못 되었기 때문에 달리 돈을 벌 능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니 뱀을 잡는 거였다. 나는 뱀을 무서워했으나 작은형은 뱀을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뱀을 잡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길을 가다가 뱀을 발견하거나 소꼴을 베러가다가 뱀을 만나면 그걸 잡았다. 일부러 뱀을 잡으러 가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비가 며칠 내리다 멎는 날이었다. 비가 오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뱀들이 날이 개면 여지없이 많이들 기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때 한 번은 일부러 뱀이 있음직한 곳을 찾아다니긴 했다.

 

실제로 뱀을 잡을 수 있는 건 우연이었다. 소꼴을 베러 가다가 뱀을 만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산으로 둘러싸였으나 양지쪽이었던 우리 집 근처 산에는 살모사들이 제법 많았다. 어느 하루는 소꼴을 베러 가다가 살모사를 네 마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소꼴을 베러가다가 갈나무에서 투닥투닥 소리가 나서 보면 살모사가 나뭇잎 위를 기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지체 없이 작은형은 지게작대기의 윗부분인 와이자 형 부분으로 뱀의 목 부근을 누른다. 다부지게 누른 다음 그 상태로 나에게 누르도록 시킨다. 그 사이 작은형은 주변에서 싸리나무를 잘라 껍질을 벗긴다. 싸리나무 껍질은 질겨서 잘 끊기지 않는다. 그걸로 홀치기를 만든다. 홀치기를 연결한 끈은 나무막대기에 매단다음, 홀치기 부분을 뱀의 머리에 씌워 목까지 내린다. 그리고 끈을 잡아당기면 뱀의 목이 제대로 홀쳐진다. 그제야 나는 지게작대기를 늦추고 작은형은 뱀을 매단 나무막대기를 들어올린다. 겁에 질려 식은땀을 줄줄 짜던 나의 임무는 끝난다.

 

소꼴을 베러 가던 중이라도 일단 뱀을 잡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비료포대를 가지고 간 날은 뱀을 잡으면 비료포대에 담아서 입구를 막고 나무에 매달아 두었다가 소꼴을 다 벤 다음 들고 오면 되었다. 어느 날은 그렇게 네 마리를 잡은 날도 있었다. 집에 오면 뒤뜰에 큰항아리가 있는데 뱀독이 있었다. 독 안 밑바닥에 뱀이 파고 들어가도 드러날 만큼의 흙만 넣어둔 그 안에 뱀을 잡는 대로 넣어두곤 했다.

 

엄마도 아버지도 뱀을 절대로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돈이니까 뱀이 나타나면 뱀을 잡으려고 작은형을 불러대곤 했다. 한 번은 우리 집 바로 옆에 무덤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무덤에서 커다란 뱀을 발견했다. 겁은 났지만 나는 재빨리 지게작대기를 가져다가 놈의 머리를 세게 눌렀다. 그리곤 엄마를 불렀다. 누르는 일을 엄마한테 맡기고 나는 소꼴을 베러간 작은형을 찾아 나섰다. 뱀을 생포할 수 있는 사람은 작은형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작은형을 찾아 불러왔을 때 겁에 질린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빠져나가려는 뱀을 어찌나 세게 누르셨던지 뱀의 목 부분이 껍질이 약간 벗겨져 있었다. 작은형은 지체 없이 뱀의 목을 맨손으로 잡아 들어 올리곤 밀뱀이라며 실망스러워했다. 크긴 했으나 가격은 최하의 뱀이었다. 돈이 된다니까 겁이 났음에도 그걸 누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면서 엄마는 그 후에도 가끔 그때 말씀을 하곤 하셨다.

 

한 달에 한두 번 뱀 장수가 우리 집까지 찾아오곤 했다. 그때는 제법 돈을 만지는 날이었다. 그때 어른들 하루 품삯이 500원이었으니, 살모사 두 마리 값밖에 되지 않았다. 꽃뱀이니 밀뱀은 10-30원, 독사는 100원, 까치독사는 150원, 살모사는 250-300원, 구렁이가 제일 비쌌는데 큰 구렁이는 1000원까지 했으나 먹구렁이와 금구렁이가 그렇게 했고 말이 구렁이지 능글능글하고 음흉하게 생긴 능구렁이는 1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작은형과 나는 구렁이를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제법 뱀을 잡아 목돈을 만질 수는 있었다. 그 돈은 고스란히 엄마 손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목돈이 생기면 살림에 보탬이 되련만 참 신기한 일이 그럴 때면 여지없이 서울에서 공부하던 큰형이 나타나곤 했다. 전화도 없던 시절, 아무런 연락 수단이 없던 시절인데, 실제로 텔레파시가 통했던지 집에 목돈이 생기면 큰형이 나타났고, 목돈은 고스란히 큰형 손에 쥐어져 서울로 날랐다. 황당한 일이었으나 그때는 작은형도 나도 그걸 당연하다 여겼다.

 

그때는 몰랐다, 나도 작은형도 그게 희생당하는 것인지. 그저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긴 엄마 품에 머무는 의존적 존재였으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다음에야 작은형도 나도 많이 희생을 당하면서 살았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큰형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그 밑바탕에 작은형은 물론이고 나의 기여도 조금은 있었을 테니까.

 

과거는 누구도 내게 보상하지 않는다. 그걸 교훈삼아 보상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그런 거려니 받아들이고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내가 내게 보상하며, 내가 나를 위로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돌아보면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나를 이뤄 왔음을 안다. 나의 정신 구조를 만들어 주었고,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 살아서 안 된다는 의지를 심어주었음을 안다. 어린 날의 순간순간은 그만큼 어른이 되었을 때의 정신 구조를 형성하고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으나 의미는 충분하다.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지금 삶에 충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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