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9- 설렘이 절망으로 변할 때

영광도서 0 470

“별과도 속삭이네

 

눈웃음 치네

 

부풀은 열아홉 살 순정 아가씨”

 

이 노래, 가사도 잘 모르지만 첫 대목만 들으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여전히 나 열네 살 어느 날 밤의 추억이다. 절망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희망, 꿈같은 아름다운 일이었는데 지옥으로 변하는 비애랄까, 간혹 우리에겐 이렇게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때가 간혹 있다. 모를 때는 꿈이요 희망이 알고 나면 절망이요 비극과 같은 일들, 아는 게 병이냐 하면, 모르고 지내다가도 결국은 언젠가 알게 될 테고 그때의 절망은 더 클 테니 알아야 할 것은 미리 아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까?

 

작은누나가 밤에 잠자리에서 평소와는 달리 노래를 불렀다. 다름 아닌 그 노래, “별과도 속삭이네 눈웃음 치네”였다. 약각은 설렘과 떨림이 들어간 듯한 누나의 목소리가 그 밤을 희망으로 만들었다. 다름 아닌 누나의 혼사문제였다. 아버지께서 3일장에 다녀오시면서 말을 떼어주었다고 했다. 작은누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총각, 면소재지 장터 근처에 산다는 총각과의 혼사를 허락하고 왔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작은누나는 “신랑감이 형부보다 잘생겼어요?”라고 물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아버지는 낫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누나는 설레였던 것 같았다. 그 밤에 이 노래를 불렀으니까.

 

사연은 이러했다. 우리가 살던 가족동, 폐광은 되었으나 금광이 있었는데, 금광 건너편에 함밥집이 있었다. 두 노인만 사는 이 집 할매는 가끔 중매를 서곤 했는데 그때 작은누나를 중매랍시고 선 거였다. 마침 장에 간 길에 아버지는 함밥집 할매와 그 집을 방문하였고, 신랑감을 만나보고 술 대접을 잘 받은 모양이었다. 그 일로 작은누나와 그 신랑감과 혼사가 성립한 걸로 말로 안 되는 절차에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전히 술에 취하여 아버지께서 아버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돌아오셨다. 작은누나, 작은형 그리고 나는 윗방에서 불을 끄고 잠들었다 깬 상태였다. 등잔불 밝혀진 아랫방에 들어오신 아버지 친구, 변씨 아저씨가 멈칫멈칫하면서 뭔가 엄마에게 뭔가 할 말씀이 있는 듯 했다. 이를 눈치 챈 엄마는 무슨 일인지 말씀을 독촉했다. 망설이던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다름 아닌 작은누나의 신랑감 이야기였다. 우리는 다른 곳에 살다 이사왔지만 여기 오래 살았던 아저씨는 그곳 사람들의 사정을 훤히 아셨다. 그 분 말씀이 신랑감이 손에 장애가 있는데다 셈도 잘 못하는 저능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술에 취하셨지만 아버지는 아저씨가 비밀을 털어내자 아저씨를 원망하자 다 앞날을 위한 거라며 덤벼드는 아버지를 주저앉혔다. 그래도 반항을 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저씨는 드잡이를 뜰 양으로 일어나시면서 “이판사판이다. 일사이사야.”라며 “그래 그런 놈한테 딸을 시집보낼 테냐. 너를 위해 해준 말인데 그래, 너 죽고 나 죽자.”라며 아버지와 싸웠다. 엄마가 간신히 말려 아저씨를 집으로 보냈다.

 

전전날 밤까지도 설렘으로 그 노래를 불렀던 누나도 그 밤 아저씨가 한 말을 모두 들었다. 누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누나의 마음은 절망에 깊이 빠졌을 터였다. 총명했던 누나였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 그런데 그 남자가 보통 남자도 아니고 조금은 덜 떨어진 남자라는 것, 그럼에도 아버지가 허락하셨으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 밤을 꼬박 새웠을 터였다.

 

나는 그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을지, 별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어른들의 일이었다. 다만 새로 생긴 매형은 어떤 남자일까, 돈은 좀 있는 집안이라니까 괜찮겠다 싶어 누나와 함께 설렜을 뿐이었는데, 새 매형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면 친구들에게 창피하겠다 싶었다. 예측은 가능했다. 다부지고 총명한 누나가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일이 벌어졌으니 평소 소극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그대로 일을 진행하시려 할 터이고, 누나는 어떻게든 일을 회피하려 할 테니 이후 벌어질 일이 어린 나에게도 걱정은 걱정이었다.

 

우리 집에 밀려온 그 끔찍한 날의 시작, 누나의 용기 있는 행동, 엄마의 끔찍한 시련을 불러온 그날, 며칠간의 설렘이 절망으로 바뀐 그날 밤, 두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어쩌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어떻게 그냥저냥 일이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사셨던 아버지로 인한 시련을 돌아보면 가끔 아버지가 원망스럽긴 하다. 때로는 내가 희생을 하더라도, 네 체면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아니 가족에겐 절대로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가장이라면 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아닐까 싶어서다. 남들이 착하다는 건 어쩌면 가족에겐 악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남들 알 만큼 알고, 때론 남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내 앞가림을 하면서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않겠나 싶다. 몰랐을 때의 설렘이 알았을 때 절망이 되지 않도록. 아는 게 병이 아니라 아는 게 힘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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