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0- 작은누나의 선택
“니는 요즘 웬 지난 이야기만 해쌌노. 얼마 안 살고 죽을 사람처럼 지난 이야기만 하나?”
한 친구가 내 요즘 글을 보며 보낸 말이다. 그야 어찌 알겠는가? 사람의 운명이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내 삶의 애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삶을 산다.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산다. 다른 삶 하나하나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그 삶은 고스란히 소멸된다. 각 사람은 하나의 소우주,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말하지 않고 떠나면 한 소우주가 고스란히 소멸되고 만다. 하여 나는 이런 믿음 때문에 용기를 내어 내 삶을 말한다.
용기, 내 삶을 말할 용기 외에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할 용기를 내련다. 많은 망설임 끝에 내 누나의 이야기를 좀 더 하련다.
작은누나, 누나는 위로부터의 선택을 거부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당시엔 그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수로 혼사는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이를 정지시킬 여지도 없이 미래의 사돈댁에선 사주단지를 가져올 날짜, 약혼식 날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방문하겠다는 전갈이 왔다. 오래지 않아 그날은 왔다. 응당 형식적으로 우리 부모님과 작은누나가 자리를 해야 했다. 부모님과 큰매형이 아랫방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작은누나와 우리 형제들은 윗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녁에 매형감과 미래 사돈댁 그리고 중매쟁이 함밥집 할매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방 가운데에 곱게 싼 보자기가 펼쳐졌다. 보자기 안에 붉고 고급스러운 상자가 정체를 드러냈다. 사주가 든 결혼패물들이 담긴 상자였다. 자리는 마련되었고 이제 주인공들의 대면시간이었다.
엄마가 윗방에 작은누나를 부르러 윗방 문 가까이 와서 누나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아랫방엔 등잔불이 켜져 있어 사람들 분간이 되었으나 윗방엔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에 실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엄마가 세 차례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엄마가 윗방에 오셨다. 이미 누나는 밖에 나간 후였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누나가 뒤뜰에 있는 옥수수 섶으로 삼각형 모양의 광을 만들고 그 안에 김치 독을 묻은 곳에 숨었다는 것을. 당사자 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그날의 약혼식은 그대로 미뤄졌다. 소란과 소동이 일어났지만 그날 그들은 든든한 큰매형이 지키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부모님이 설득해서 다시 날짜를 잡겠다는 걸 믿었음인지 작은 소동 끝에 돌아갔다.
이미 밖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엄마와 작은형과 나는 뒤뜰로 갔다. 그런데 김치 광에 누나는 없었다. 겨울이라 온 들과 산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어서 환한 듯했다. 겨울밤에 깊은 산 속에 집이라고 없는 곳에 누나는 어디로 간 걸까, 김치 광에 숨어 있던 누나는 그래도 불안했던지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그 겨울밤에 산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산으로 들어가기엔 무서웠을 텐데, 심히 걱정이 된 엄마와 우리 형제는 누나를 찾아 나섰다. 횃불을 밝히고 집 밖으로 나섰다 눈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나섰다. 집의 우측으로 가면 개울이 있었는데 그 쪽이었다. 그 길은 개울을 건너가는 길이 있고 개울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었는데, 누나의 발자국은 개울 따라 오르는 길을 따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 언덕을 오르면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 쪽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 이르기 전에 길에서 벗어나 가파른 밭으로 발자국은 이어졌다. 그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불과 500여 미터 오르면 백우산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거기에서 발자국은 더는 오르지 않고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도관리 쪽에서 백우산 막치미 집 그 집에서 발자국이 멈췄다. 그 집은 내겐 형님뻘이지만 할아버지가 사는 집이었다. 누나는 그 집에 무사히 숨어 있었다. 누나의 안전을 확인하고, 믿을 만한 집에 있으니 안심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누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엄마와 우리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로 사실상 누나의 결혼은 파혼한 셈이었다. 당사자 간 대면도 없었던 결혼식의 파혼, 그걸로 물론 쉽게 마무리 되지는 않았다. 엄마에겐 가혹한 시간, 누나에겐 조마조마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관습이 우선했던 시절, 무지는 많은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그럼에도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내 삶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누나의 용기는 쉽지 않았다. 누나의 선택은 옳았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때 그 관습을 그대로 순응했다면 누나의 인생이 아닌 강요당한 인생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내가 선택한 삶은 그 삶이 어떻든 누구를 원망할 이유는 없다. 반면 다른 사람이 선택한 내 삶은 나중에 좋지 않으면 원망의 조건을 준다. 내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깨우쳐준 누나, 누구보다 현명하고 똑똑했던 누나, 엄마가 없는 지금은 엄마를 대신하는 누나, 누나와 통화를 하노라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몸처럼 마음이 약해지나 싶다. 이번 추석엔 누나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는데 누나도 내 마음 알아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