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3- 1년 만에 다시 이사를 하다

영광도서 0 469

물리적인 시간, 계기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정확하게 주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1초 1초 재깍 이는 초침 소리마냥 어김없이 간다. 하지만 심리적인 시간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리 흐른다. 유독 길게 흐르는 시간이 있다. 힘겨운 삶, 불행한 삶, 되는 일이 없는 삶에는 시간이 늦장을 부리는 듯 더디 흐른다. 지옥 같은 시간이다. 반대로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의 시간은 아주 빨리 아깝게 흐른다.

 

그랬다. 우렁골에서 일 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 일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나마 오막살이 한 채 있던 것을 팔고 집이 없어서 사돈댁의 집으로 이사해서 산 일 년, 유독 사연 많은 한 해였다. 작은형과 뱀을 잡아 난생처음으로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탰던 해이기도 했고, 벌을 잡겠다고 화약을 사용했다가 나뭇가리에 불을 낼 뻔도 했고, 작은누나 혼사문제로 지독한 홍역을 치루기도 한 해였다.

 

딸도 자식이니까 큰누나네 집에 들어가 살면 별 문제가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면서 큰누나의 시집살이는 훨씬 힘들었다. 열여섯에 시집가서 큰누나의 시어머니에게 매를 맞는가 하면, 때로는 옷을 갈기갈기 찢기는 수모를 당하곤 했었는데, 우리에게 아무 걱정 없이 와서 살라고 하던 사돈할매는 그걸 빌미로 누나를 더 괴롭혔다. 혹여나 쌀이나 곡식을 빼돌려 친정을 돕는가 의심해서 괴롭혔고,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못 살게 굴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돈할매, 그런 사정을 몰랐다가 알고 나서는 더 이상 그 집에 살 수는 없었다.

 

죽으라는 법이 없는지, 마침 넷째 고종사촌형이 새로 집이 딸린 토지를 구입했다. 전에 우리가 살던 바로 앞집 허씨네 집이었다. “사돈 눈치 보지 말고 외삼촌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아요. 이 집에서 집 살 때까지 사세요.”라며 우리에게 그 집으로 이사 올 것을 권했다. dfl 재고 저리 잴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든 일단 사돈집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해서 곡절 많았던 일 년간의 도관리 우렁골의 삶을 접고 진정한 고향인 광암리로 다시 이사를 했다.

 

정들었던 이웃들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교회도 다시 가까웠고 친구들도 더 자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산만 보이던 집에서 확 트여서 봉당에 나서면 동네 여러 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집에 딸린 밭들은 비탈 밭이 아니라 비교적 평평한 밭이어서 경작하기도 좋았다. 물론 거저 그 집에 들어와 사는 게 아니었다. 도조를 내야 했다. 그럼에도 고종사촌형이 고마운 것이 집과 토지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암소 한 마리도 끌어다 주었다. 그 소가 새끼를 낳으면 송아지의 절반은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었다. 농촌에서 큰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를 길러주기였다.

 

이를 테면 소를 소유하지 못한 집은 남의 소를 기른다. 소는 많지만 스스로 기를 수 없는 부자들은 소를 남에게 맡기는 대신, 그 소의 본 값을 치고, 그 소가 좀 더 자라거나 값이 오르면 본값을 제외하고 남은 이익을 반분한다. 그러니까 암소나 암송아지를 대신 기르는 것이 유리하다. 암소를 기르면 일 년에 송아지 한 마리를 낳는다. 적어도 2년을 기르면 송아지를 두 마리를 낳을 테니 한 마리는 기르는 사람 차지가 된다.

 

사돈댁에서 쫓겨 오다시피 이사를 오던 날, 우리가 다시 이사 온다니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이 총 출동하여 이사 하는 날 지게를 짊어지고 우렁골로 왔다. 덕분에 이사는 오래 걸리지 않고 쉽게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일 년은 지워진 듯 원래의 삶을 새로 시작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물론 변화는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집엔 안씨네가 이사를 왔고, 우렁골 넘어가는 고개 아래 집엔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게 동시를 가르쳤던 서선생님 댁이 이사를 왔고, 개울 건너 황부자집엔 방씨네가 이사를 왔다. 그 외엔 전에 살던 이들이 그대로였다.

 

사돈댁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겠다, 평평한 밭을 경작할 수 있겠다, 키울 소도 생겼겠다, 지긋지긋한 일 년 간의 지옥 같은 삶을 지우고 새로운 희망으로 광암리 생활을 되찾았다. 인생유전이라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바로 새로 이사온 집 마당에서 가이상을 하다 이마를 심하게 갰던 집, 밤에 잠을 자다 이불에 오줌을 싸서 소금을 얻으러 갔던 집, 마당이 넓어 부러웠던 집, 그 집이 이 집이었다. 비록 남의 집 살이 이긴 했지만 그 집에 살려니 희망이 솟는 듯했다. 내 열 다섯 삶의 시작이었다.

 

“그저 오는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요즘 한창 유행중인 나훈아의 <테스형>의 가사처럼 시간이 어김없이 오고 간다. 고마운 오늘이면 내일은 더 희망으로 다가올 테지만, 힘겨운 오늘이면 내일은 어두운 터널처럼 다가온다. 그만큼 오늘이 중요하다. 희망으로 맞이하는 오늘이라면 시간은 즐겁게 흐를 터이고, 절망으로 맞는 오늘이라면 오늘은 희망고문으로 버틸 터이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희망 고문의 노래를 부르든 그렇게 삶을 노래하며 산다. 오늘,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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