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8- 타작 그리고 도리깨질
알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은 음악성을 지닌 것 같다. 모를 심는 일, 벼를 베는 일, 콩을 꺽는 일, 팥을 뽑는 일, 이 모두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하려면 마치 음악을 하듯 박자를 맞추어 하면 덜 힘들다. 도리깨질 역시 그렇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날씨가 추워져 땅을 얼부풀게 하기 전에 타작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마당질을 해야 한다. 울퉁불퉁해진 마당을 평평하게 고라야 한다. 황토가 많지 않은 곳이라 황토가 나는 곳이 따로 있어, 그곳에 가서 황토를 파서 소쿠리를 단 지게에 담아 와야 한다. 여러 짐의 황토를 마당가에 부어 놓고 물로 반죽을 한 다음 마당에 고루 펴서 마당을 고르게 만든다. 그렇게 하여 마당이 마르기 전에는 사람도 짐승도 마당으로 다니지 못하게 한다.
마당질을 한 다음, 타작을 할 때는 마당에 멍석을 깔지 않고 맨 마당에서 타작을 한다. 깨 타작은 어렵지 않다. 굳이 도리깨질을 하지 않고 막대기면 충분하다. 마당에 잘라서 말려온 깨를 줄지어 펼쳐 놓고 막대기로 두들겨 대면 알들이 쏙쏙 잘도 빠져 나온다. 떨기는 아주 쉬운 깨에는 벌레들이 많아서 정리할 때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반면 팥이나 콩을 타작할 때는 도리깨를 준비해야 한다. 깨에 비해 몇 배는 잘 안 떨리기 때문이다. 도리깨는 팥이나 콩 짚을 두드리는 데 훨씬 힘이 덜 들고 훨씬 세게 두드릴 수 있다. 도리깨를 만들려면 자루로 쓰이는 자작나무나 노간주나무, 대상을 때리는 가지로 쓰이는 물푸레나무가 필요하다. 자루에 해당하는 것을 아버지라 하고 자루에 매달려 대상을 때리는 것을 세 아들이라고 부른다. 우선 아버지에 해당하는 자루는 노간주나무나 자작나무로 만든다. 이들 나무의 공통점은 단단하여 잘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팔뚝 정도의 두께를 가진 3미터 가량의 훤칠한 노간주나무나 자작나무를 베어다가 좀 더 굵은 밑 부분에 구멍을 낸다. 그 구멍에 단단한 물푸레나무를 끼운다. 물푸레나무 새순의 밑 부분을 깊게 자르면 올챙이 머리처럼 옹이가 있기 때문에 구멍에 끼우면 한쪽은 자동으로 걸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내민 장치에 아들을 매달 차례다. 아들에 해당하는 것 역시 물푸레나무 새순으로 만든다. 1미터 가량의 물푸레나무 새순을 자를 때 밑 부분을 그대로 따낸다. 그러면 밑 부분은 올챙이 머리처럼 생긴 부분이 그대로 달려 나온다. 그렇게 잘라낸 새순 셋으로 아들로 만든다. 가는 부분을 자루에서 구멍을 내어 내민 나무에 단단한 끈으로 고정시킨다. 세 아들은 중간 중간 세 부분을 고정시켜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만든다. 가는 부분은 자루에 매달리고 머리 부분은 아래로 쳐져 대상을 때리는 역할을 한다. 자루를 잡아 한 바퀴 돌리면서 내리치면 물푸레 세 아들은 콩이나 팥 짚을 두드려 알을 빠지게 만든다.
도리깨질은 둘 또는 셋이 같은 마당에서 함께 한다. 마치 음악을 하듯 서로 교차하면서 도리깨질을 한다. 서로 박자를 잘 맞추어 오르내림을 해야 서로 부딪지 않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로 속도를 맞추려니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쉬어도 함께 쉬어야 한다. 하루 종일 음악처럼 서로 속도를 맞추어 서로 어긋나도록 도리깨질을 하기 때문에 서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가리에서 빼온 단들은 해체되고 마당에 일정한 두께로 깔린다. 바닥에 깔린 콩이나 팥은 도리깨 맞을 준비를 한다. 마당 한가득 잘 말린 팥 단이나 콩 단들을 펼쳐 깐다. 그 다음엔 단을 묶었던 칡을 끊는다. 그 다음부터 도리깨질을 시작한다. 팥은 콩에 비해 잘 떨리는 편이다. 팥이나 콩을 떨어내고 섶을 걷어내면 마당엔 노란 콩이나 빨간 팥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서 해야 했던 타작, 하루 종일 도리깨질을 하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팔은 팔대로 아프고 허리는 허리대로 아프다. 게다가 콩을 털 때는 콩 껍질에 맺혀 있던 미세한 가시들이 온 몸을 찔러댄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을 듯싶은 도리깨질, 타작마당, 막상 직접 해보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선지 서울 생활을 하다가 친구들이 일하기가 싫을 때 ‘농사나 지러 가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농사는 쉽지 않다는 걸 말해주곤 한다.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흘러야 하는 기다림도 기꺼이 즐겨야 하고, 육체적 고통도 견뎌야 하고, 항상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아버지와 작은형 그리고 나 셋이서 마당 한가득한 콩을 또는 팥을 도리깨질을 하던 그 어느 늦가을 오후를 생각한다. 힘들지만 쉬고 싶지만 아버지와 작은형에 맞추어 도리깨질 하던, 나름 오기로 끝내 참으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던 조금은 미련했던 그 날들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래선지 어쩌다 작은형과 통화를 하려면 마지막엔 눈물이 왈칵 솟아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