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4- 새마을지도자 교육 받던 날이 불침번

영광도서 0 811

가끔 나는 나를 돌아본다. 거창하게는 성찰이라고나 할까! 나를 돌아보면 나는 참 위선적이라는, 이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남들이 볼 때는 선하다, 착하다, 정직하다, 믿을 만하다, 겉으로만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 긍정적으로 나를 보고 있음을 눈치 챈다. 실제로는 나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 오히려 이기적이다. 때로는 남을 골탕 먹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나를, 피상적인 나를 믿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겨울이면 땔감 마련을 하거나 토끼잡이를 하거나 논바닥에서 짚을 뭉친 공으로 축거를 하거나 하는 일 외엔 별일이 없었다. 물론 가끔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를 꼬거나 싸리나무로 다래끼를 만들거나 갈대자리나 왕골자리를 짜거나 하는 일도 있었지만 여유 있을 때 하는 일들이었다. 대신에 관에서 시행하는 이런 저런 교육이 있었다.

 

나에게도 교육 하나가 떨어졌다. 마을에 청년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명목상 4H클럽이 있었으니 내가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 우리 마을에도 미래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받을 사람을 추천하라는 공문이 왔다. 이장이 나를 추천하는 바람에 읍내로 교육을 나갔다.

 

각 면에서 세 명씩 뽑혀온 청년들이 한 곳에 모여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그야말로 농촌후계자들인 셈이었다. 모두 서로 낯선 사이였지만 여러 활동을 하면서 쉽게 가까워졌다. 하루 교육이 아니라 2박 3일의 교육,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들 모두 낯설기는 했지만 나름 각자 마을의 모범 청년들이라 아무런 트러블 없이 서로 협조 잘하고 모든 교육을 순조롭게 잘 받았다.

 

거의 일성적인 생활에 새로운 집단생활은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또한 거의 같은 음식만 먹다가 새로운 음식을 접하니 좋았다. 내 돈 안 내고 모든 것을 관에서 부담해주는 생활은 즐겁고 신선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작물들이며, 농촌의 실상과 미래의 농촌을 배우는 것도 뜻 깊었다. 새로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서로 주소를 주고받으며 설레는 관계를 맺는 것도 좋았다.

 

숙소는 각자 따로 있지는 않았다. 병영처럼 한 방에서 일정 구간을 나누어 잠을 자야 했다. 그러다 보니 두 명씩 불침번을 섰다. 모은 사람들 계산을 해서 시간을 배분해보디 두 사람이 두 시간씩 불침번을 서면되었다. 나와 둘, 우리 조는 마지막 날 아침 조 바로 앞선 조였다. 우리 때가 되어 일어났다. 불침번의 시작이었다. 한창 졸릴 시간에 불침번 두 시간 그리 짧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계산해 보니 굳이 우리가 두 시간을 꼬박 채우면 다음 조인 마지막 조는 한 시간만 서면되었다. 짓궂은 생각이기도 하고 우리 편한 일이가도 해서, 내가 동료에게 제안을 했다. 한 시간만 우리가 서고 다음 조를 깨우자고.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그 친구의 걱정에 나는 벽시계를 한 시간 빨리 돌려놓았다. 친구는 ‘아하’ 하는 표정으로 내 생각에 따랐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눈치를 보아 벽시계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하여 그 일은 그 친구와 나만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그때 분명 많은 것들을 배웠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무엇을 배웠는지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실제로 농촌에서 생활하는 데 유익한 내용들이었는지, 솔직히 상투적이거나 형식적은 프로그램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어쩌면 나중에 새마을지도자가 되거나 아니면 농촌지도자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잘난 기억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도무지 아무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불침번 설 때 사기를 친 것만 생각난다. 지금 돌아보면, 그 일뿐 아니라 다른 여러 일들을 할 때도 어려서부터 그런 얍삽한 계산을 하여 비록 남들에게 눈에 보이는 피해는 안 주었다 해도 나를 위한 이기저인 요령을 많이 부린 것 같다. 소위 마음이 조금만 더 비뚤어졌더라면 나는 사기꾼 기질이 충분했을 듯싶다. 그리 안 되었으니 ‘하나님이 보우하사’이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나는 이기적이며 위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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