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47- 펜팔로 맺는 인연

영광도서 0 870

누구나 한번쯤 삶의 멀미를 앓는다. 나중에 알지만 그게 사춘기라는 것을. 이유 없이 외롭고 방황하고 싶고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싶은 마음의 싱숭생숭 거림, 그게 사춘기리라. 돌아보면 조금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때처럼 설렘과 뭔가 찾아올 듯 때로는 환상에 젖는 그때가 참 아름다운 시절인 것 같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많은 생각을 하고 풋풋한 글귀를 쓰기도 하고 한때 시인이 되어보기도 하는 그때, 그 감정을 되찾지 못해 아쉽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 버스도 다니지 않는 마을, 전화도 없는 마을, 군사비상도로가 신작로 역할을 하는 마을에 나는 살았다. 처녀 총각들은 도시로 취직을 나갔다. 그들은 추석이나 설날이면 고향을 찾아왔다. 얼굴이 희멀게지고 옷은 세련되고 구두를 신었다. 반면 시골에 남은 우리는 얼굴은 그을리고 옷차림은 거의 민방위 옷을 입고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나는 농촌이 좋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 번 휩쓸고 가고 나면 왠지 쓸쓸했다. 낮에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저녁이면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이것저것 끼적거렸다. 시라면 시, 산문이라면 산문, 그렇게 형식 없이 썼지만 나름 읽어보면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때부터 펜팔에 관심을 가졌다. 포켓가요 책, 노래 책 중에 제일 작고 쌌다. 그 책을 사면 뒷면에 펜팔 원하는 이들의 주소가 있었다. 그 주소로 그럴 듯한 편지를 써 보냈다. 하지만 한 번도 답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작전을 바꿨다. 엽서를 보내면 소개하면서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소를 불러주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름 우편엽서를 사서 그럴듯하게 그림도 그리고 그럴듯한 문구를 적어서 신청곡과 함께 보냈다. 당연히 펜팔을 원한다는 사연과 함께. 내 이름 석 자를 쓰긴 쑥스러워서 ‘최현’이란 이름으로 엽서를 꾸며 보냈다. 우리 동네엔 최씨 성을 가진 집이 없었기 때문에 최씨 편지는 무조건 우리 집으로 왔다. 우체부 아저씨가 집집마다 배달하는 건 아니어서 열한 시면 누런 큰 가방을 메고 가족고개를 넘어오는 아저씨를 기다렸다. 물론 논이나 밭에서 일하다 잠깐 아저씨를 만나러 가면 되었다.

 

그래도 그건 통했다. 일주일에 서너 통의 편지가 왔다. 미지의 소녀들, 충북 음성의 과수원집 딸이라든가 광주의 어느 소녀라든가 편지를 받으면 무척 설렜다. 장난이 아니었다. 진실로 사귀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편지는 길어야 대여섯 번 오고가면 다시 끊겼다. 그러고 나면 허전했다. 그러면 다시 엽서를 보냈다. ‘정오의 노래선물’이라든가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곳에 엽서를 보내면 다시 편팔 상대가 생겼다. 다시 설레는 마음, 뭔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드디어 꽤 여러 번 편지를 주고받는 상대가 생겼다. 수유리 호산나 미용실에 근무한다난 소녀 임양이었다. 여러 번의 편지가 오고 가고 사진도 교환했다. 펀지를 주고받을수록 궁금했다. 사진을 보니 더욱 만나고 싶었다. 액속을 정하고 드디어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렇다고 깊이 있는 만남은 아니었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시골로 귀향했다. 그리고 편지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절교의 편지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충격이 더 심했다. 분명히 겉봉투엔 나의 이름이었는데 편지 내용은 다른 남자한테 보내는 거였다. 순수했다고 할까, 순진했다고 할까, 시골 소년이었던 나는 진심으로 사겨보려고 했는데,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양다리를 걸쳤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편지를 찢어버리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걸로 일 년 가까이 진심으로 대한 소녀와 관계를 끊었다. 순수했거나 순진했던 나의 시절이었다.

 

지나간 일은 모두 아름답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아름답다. 사춘기적의 순수함, 진실하고 순진하여 모든 걸 진실로 믿었던 시절, 그래서 실망도 하지만 세상을 진실하게 알았던 시절로 이제는 돌아갈 수는 없다. 사람을 믿으려면 한참 걸리는 요즘, 세상에 오염되고 때 묻은 지금, 그때 순수 그 시절로 일주일쯤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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