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50- 영어공부를 시작하다
친구들은 중학교 진학을 하고 나는 못하고 나니 제일 부러운 게 멋진 교복을 입고, 각진 교모를 쓴 모습이었다. 이것이 겉으로 부러운 것이었다면, 정신적으로는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은 영어를 배운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내 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는 소라를 하면 은근히 질투가 생겼다. 내 동생은 좀 늦게 내가 절차를 밟아 진학 시켰으면서도 동생이 영어를 아는 척하면 괜히 짜증이 났다.
예를 들면 나는 man을 ‘맨’으로 읽듯이 woman은 당연히 ‘우맨’이라고 읽자, 동생은 ‘우맨’이 아니라 ‘위민’이라고 읽는다는 것이다. 앞에 ‘우’만 다르고 뒤엔 ‘맨’그대로 있잖냐고 따지자 동생은 선생님한테 그렇게 배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을 들으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겐 선생이 없으니 그게 억울했다.
그때부터 영어를 공부했다. 신동운 영어강이록 기초편이 얄팍한 책으로 6권이었는데 통신으로 구입했다. 생각보다 설명이 친절하고 귀웠다. 영어강의록이라지만 한글이 훨씬 많아서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그래야 기초적인 어휘뿐이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잘못 이해하는 단어도 많았다. 가령 버스를 타교 읍내에 가려면 꾸불꾸불 빞장 도로를 달릴 때도 있었다. 철정검문소까자는 비포장 도로였다. 그 도로를 달리려면 굽이길도 많았다. 심한 경사길도 많았다. 그런 도로 옆엔 삼각형 모양의 위험표지판이 많았다. 그 표지판을 보면 윗줄엔 ‘위험’ 그리고 아랫줄엔 영어로 ‘Danger'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도 영어 강의록을 읽었다고 그럴 듯하게 발음을 했다. 위험 그 다음엔 ’단계‘라고 읽었다. 당연히 뜻도 ‘Danger'를 위험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위험단계‘로 생각했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친구에겐 아는 척하면서 이곳은 ’위험단계‘ 지역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면 그 친구는 진짜인 줄 알고 나를 멋지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참 한심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나중에 단어의 뜻을 알고서야 내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 친구는 언제쯤 진실을 알았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부끄럽긴 했지만 신동운영어강의록 기초편을 꼼꼼하게 공부하면서 기초 문법은 물론 어휘도 좀 늘였다. 그 다음에 이어서 중급편도 구입해서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어디서 쓸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공부하는 재미로 공부했다.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였지만 다른 책을 볼 수는 없었다. 그만큼 시골에선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만화책 정도야 구멍가게에서 빌릴 수 있었고 구입할 수 있었지만 동네엔 서점이 없었다. 읍내에나 나가야 서점이 있었을 터이지만 읍내에 도통 나갈 기회가 없었으니 서점이란 개념도 몰랐다. 다만 잡지 등에 소개하는 책들, 통신으로 구입하는 정도였다.
호랑이 없는 곳에서는 토끼가 왕이라고, 우리 동네엔 중학교 진학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를 조금은 알아도 아주 많이 아는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 믿어주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많은 잘못된 지식을 왜곡하여 전달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아는 게 힘이라고, 잘못 알면서도 스스로도 모르니 그걸 진실로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옳다 여기고 다른 이에게 그대로 가르친다. 곡학아세, 나도 참 많은 그런 짓을 한 것 같다. 하긴 그런 용감성과 배짱이 지금의 나로 인도했으리라. 나의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으니, 그 첫걸음, 오류도 많았던 미약한 시작이 지금 여기에 이르렀으니 후회는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