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10회 - " 어린 왕자의 여행 여섯 번째 별 : 지리학자가 살고 있는 별나라 이야기(2) "

영광도서 0 622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언제나 다름이 없는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한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이 피상적으로 또는 눈으로 보아서 그렇게 판단되는 것은 쉽게 나타나지만 정신적이어서 계량화 또는 수치가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철학이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리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어야 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진리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인간 진리를 늘 그리워한다.

진리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현재에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하리란 확신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진리는 문법에서 현재형으로 쓴다. 과거의 이야기는 과거형(과거 완료형 또는 과거 진행형)을 쓰는데 비해서 진리를 쓸 때는 언제나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쩌다 과거에는 진리였던 것이 현재는 진리가 아닌 것이 있다. 현재의 진리가 미래에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가령 옛날에는 지구가 사각형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에는 진리로 인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얼마 전까지도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다.'가 진리였지만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시대가 도래 하고 보니 지금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완전한 진리라고 할 수도 없을 듯싶다.

지리학자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지리학 책은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야. 절대로 유행에 뒤떨어져서는 안 돼. 산이 자리를 옮기는 건 아주 드문 일이야. 대양에 물이 마른다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고.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기록하는 거야."
어린 왕자가 말을 막았어요.
"하지만 꺼져 있던 화산이 다시 깨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덧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화산이 죽었건 살았건 상관없어. 그건 우리에겐 똑같은 거야. 중요한 것은 산이야. 산은 변하지 않는 거니까."
"그런데 '덧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한번 질문을 던지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어요.
"그건 '머지않아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뜻이야."
"내 꽃이 머지않아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요?"
"물론이지."

어쨌든 진리는 소중하다. 쉽게 변하는 것이 아름다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덧없는 것이다. 반면에 늘 그대로 있는 것은 보기에 답답하고 구태의연할 수도 있지만 늘 변함이 없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관계는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다.. 오랫동안 만나면서 서로의 진가를 알게 되는 관계, 그런 만남이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해야 될 만남이다.

혼자이기보다는 누군가를 기다릴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누군가를 가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생각이 설령 아픔이어도 누군가를 만났었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더불어 삶의 경험이기에 소중한 추억이다. 추억을 만들며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무런 추억도, 애련한 기억도 없이 삶을 산다는 건 무미건조한 삶이고 만다. 이런 소박한 마음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만남에 있어 어떤 이해관계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곤 한다. 순수하게 만나는 만남이 점차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간직할 만한 추억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어린 왕자는 생각했어요. '내 꽃은 덧없는 거구나. 내 꽃은 세상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네 개의 가시밖에 가진 것이 없고, 그런 꽃을 내 별에 단 혼자 남겨두었다니!'
이것이 처음으로 그가 후회한 순간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다시금 용기를 내었어요.

"제가 어떤 곳을 방문하는 게 좋을지 조언 좀 해주실래요?"
그는 물었어요.
"지구란 별이 있어. 그 별은 평판이 좋거든……"
지리학자가 대답했어요.
어린 왕자는 자기 꽃을 생각하며 길을 떠났어요.

순수라는 말과 순결하다는 말은 다르다. 순결하다는 말은 그 무언가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바꾸어 말하면 그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이다. 반면에 순수하다는 말은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그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 때는 자제하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것이라 저의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은 순수하지 못하다. 보다 순수한 것은 그 만나는 사람이, 아니 자신이 지금 생각해 주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일 수록 좋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이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마음하나 진실하다면 그 만남은 좋은 만남이며, 그 순수한 만남이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거창한 진리는 아니어도 좋다. 세월이 흘러도 소중하게 기억될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어지는 것들, 즉 지워야 아프지 않을 기억이라도 왠지 지우기 싫은 추억, 어울리며 부대끼며 살면서 그 사람들 속에서 울고 웃는 가운데 쌓여지는 기억들을, 그 당시에는 비록 아팠을지라도 지금은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추억들을 내 삶의 소박하고 순수한 진리로 만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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