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15회 - " 바보 같은 사랑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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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7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교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는 사랑은 어리석은 사랑이다. 혼자서 기다리는 그 슬픈 짝사랑은 자신은 물론 주위를 괴롭게 하고, 상대마저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진정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가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면, 조용히 물러나 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만 좋은 그런 사랑을 할지라도 자신이 괴롭지 않고 즐겁다면 그 사랑은 한 번 해볼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괴롭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일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랑은 인생의 한 부분이지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아름답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꽃이 있다. 그 꽃의 이름은 능소화, 이 꽃의 이름을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하기도 한다. 복숭아 빛처럼 고운 뺨에 나긋나긋한 자태를 지닌 ‘소화’라는 아주 예쁜 궁녀가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왕의 눈에 띄었다. 그날로 그녀는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일개 궁녀였던 그녀는 이제 궁궐 안에 어엿한 처소를 차지하고 앉은 마님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왕은 한 번도 그녀의 처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빈들은 여러 가지 꾀를 내어 왕을 자기 처소로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순진한 건지 바보처럼 착한 건지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행여 왕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으로,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를 쳐다보며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날들이 가고, 어느 여름날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몸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지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잊혀진 그 여인은 초상도 치루지 못한 채 그녀의 유언, ‘나를 담장 가에 묻어서 내일이라도 왕이 오기를 기다리게 해 주게.’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대로 시녀들은 그녀를 담장 가에 묻어 주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다. 그 꽃의 이름은 그때부터 능소화가 되었다. 덩굴로 크는 그 꽃은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 정도로 번성하며 피는 꽃이다.
이 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아비만 기다렸던 여인의 성격을 닮은 탓인지 그 꽃이 아름다워서 만지기라도 하면, 꽃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명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으로만 감상해야하는 꽃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다운 것 같다. 사랑하는 대상이 높이 보이고, 존귀에 보이기로 서니 내가 아프고 내가 슬프다가 아무런 사랑도 얻지 못하는 그런 사랑이라면 어리석은 사랑이다. 물론 운명적으로 맺어진 사랑이야 나를 쪼개고 희생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이지만, 남녀간의 사랑이란 상응이 없는 사랑, 교감이 없는 사랑인데도 무조건 기다리는 사랑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만한 열정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다가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사람이란 유한한 존재이므로 언제까지나 찾아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려선 안 되는 것이다. 부딪쳐 깨어지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라도, 표현하고, 부딪쳐 보는 사랑이 후회하지 않을 사랑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과 사람을 다 잃느니 보다는 사람을 잃을지라도 시간은 잃지 않는 사랑, 그래서 다시 시도할 기회를 얻는 사랑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사랑은 기다리는 자를 찾아가는 눈먼 장님이 아니라, 찾는 자가 얻는 보물과 같다.* -최복현-
아름답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꽃이 있다. 그 꽃의 이름은 능소화, 이 꽃의 이름을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하기도 한다. 복숭아 빛처럼 고운 뺨에 나긋나긋한 자태를 지닌 ‘소화’라는 아주 예쁜 궁녀가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왕의 눈에 띄었다. 그날로 그녀는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일개 궁녀였던 그녀는 이제 궁궐 안에 어엿한 처소를 차지하고 앉은 마님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왕은 한 번도 그녀의 처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빈들은 여러 가지 꾀를 내어 왕을 자기 처소로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순진한 건지 바보처럼 착한 건지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행여 왕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으로,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를 쳐다보며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날들이 가고, 어느 여름날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서, 몸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지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잊혀진 그 여인은 초상도 치루지 못한 채 그녀의 유언, ‘나를 담장 가에 묻어서 내일이라도 왕이 오기를 기다리게 해 주게.’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대로 시녀들은 그녀를 담장 가에 묻어 주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다. 그 꽃의 이름은 그때부터 능소화가 되었다. 덩굴로 크는 그 꽃은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 정도로 번성하며 피는 꽃이다.
이 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아비만 기다렸던 여인의 성격을 닮은 탓인지 그 꽃이 아름다워서 만지기라도 하면, 꽃의 충이 눈에 들어가 실명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으로만 감상해야하는 꽃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다운 것 같다. 사랑하는 대상이 높이 보이고, 존귀에 보이기로 서니 내가 아프고 내가 슬프다가 아무런 사랑도 얻지 못하는 그런 사랑이라면 어리석은 사랑이다. 물론 운명적으로 맺어진 사랑이야 나를 쪼개고 희생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이지만, 남녀간의 사랑이란 상응이 없는 사랑, 교감이 없는 사랑인데도 무조건 기다리는 사랑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만한 열정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다가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사람이란 유한한 존재이므로 언제까지나 찾아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려선 안 되는 것이다. 부딪쳐 깨어지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라도, 표현하고, 부딪쳐 보는 사랑이 후회하지 않을 사랑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과 사람을 다 잃느니 보다는 사람을 잃을지라도 시간은 잃지 않는 사랑, 그래서 다시 시도할 기회를 얻는 사랑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사랑은 기다리는 자를 찾아가는 눈먼 장님이 아니라, 찾는 자가 얻는 보물과 같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