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28회 - "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사랑 "

영광도서 0 61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피를 나눈 가족들이 살아가는 관계도 있고, 우연히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관계도 있다. 피를 나눈 가족이란 관계는 미우나 고우나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반면 남남이 만나 이루어가는 관계는 때로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더 진하고 가까운 관계이지만, 자칫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고이 쌓아오던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이러한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별 것 아닌 일로 금이 가는 경우가 많다. 애정 전선에 금이 가는 일도 사실보다는 오해로 인한 경우가 많다. 아주 사소한 일이 불씨가 되어 견고하게 수십 년을 쌓아온 인간관계가 자칫 잘못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만들고, 회복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평생을 동거 동락한 어느 老부부가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했다. 참으로 그토록 인내하고 살아온 부부가 이제 다 늙어서 이혼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부부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혼 처리가 된 그날 그 처리를 맡았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 노부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날 이들 부부가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다. 통닭이 도착하자 좀 전까지 남편이었던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서 아내에게 권했다. 그렇게 권하는 모습이 워낙 보기가 좋았던 터라 동석한 변호사는 어쩌면 이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할머니는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마구 화를 내며 말했다.

"지난 30년간 당신은 늘 그래왔어. 항상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더니 이혼하는 날까지도 그러다니……. 난 다리 부위를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참 이기적인 인간이야……."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30년 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혼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자꾸 아내였던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를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거니, 그렇게만 생각했던 거지. 내가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아. 아무래도 사과라도 해서 아내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를 보고는 할아버지인 남편의 전화임을 알았다. 할머니는 아직 화가 덜 풀려 있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자 그녀는 이번에는 아주 배터리를 빼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깬 할머니는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십 년 동안 남편이 날개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에게 먼저 떼어내 건넸는데, 그 마음은 모르고 나는 뾰로통한 얼굴만 보여주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써주는 줄은 몰랐구나.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헤어지긴 했지만 늦기 전에 사과라도 해서 섭섭했던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

할머니는 휴대전화로 남편인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났나’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전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내용을 전하고는 끊었다. 할머니는 급히 전 남편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휴대전화를 꼭 잡고 죽어있는 전남편을 보았다. 그 휴대전화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할아버지는 비록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끝까지 전화를 시도하다가 결국 안 받으니까 문자메시지를 찍다가 그만 갑자기 죽고 말았던 것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다면 오해도 생기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자신의 자존심만 내세우고, 체면만 따지다가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분쟁의 씨앗은 큰 문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지내놓고 돌아보면 아주 유치할 정도로 하찮은 문제로 싸움을 시작하고, 그 싸움을 시작으로 줄줄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유감들이 감자 줄기처럼 뽑혀 나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고 오래 걸려 이루어 놓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데는 불과 수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기보다 먼저 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확인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라는 것, 인간관계라는 것은 신뢰로 쌓는 탑이지만 작은 오해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공든 탑이기도 한 것이다.

기왕의 삶, 그리고 기왕에 맺은 인간관계들을 잘 유지하기 위해 조신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말을 하기 전에 한 호흡을 늦추는 일, 그저 내 입장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배려로 서로가 오해 살 일을 줄여가며 늘 웃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갔으면 한다.


*사랑은 오해의 싹을 솎아내고 이해의 씨앗을 내 마음에 심는 일이다.* -최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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