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40회 - " 내리사랑, 치사랑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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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7
사랑이란 단어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단어도 없다. 사랑이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말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위를 향한 사랑은 효이고, 스승을 향한 사랑은 존경이고, 아래를 향한 사랑은 자식사랑이니,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옆으로 보나 아름다운 것의 근원은 모두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이다.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아래를 향한 사랑이 부모를 부모답게 만들고, 위를 향한 사랑이 자식을 자식답게 만들고, 제자답게 만들며, 진정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다.
옛날에 세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 없이 세 딸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혼자 딸들을 키우는 그녀에게는 딸들이 잘 자라주는 것이 단 하나의 기쁨이었다. 어느덧, 딸들은 시집을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먼저 큰딸에게 신랑을 정해 주었다. 키도 크고 건강한 남자였다. 잔칫날 어머니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해서 큰딸은 건넛마을로 시집을 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둘째 딸도 남부럽지 않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둘째 딸이 시집가서 흠 잡히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일을 해서 시집 밑천을 마련했던 것이다. 마침내 둘째 딸도 시집을 가게 되었고, 둘째 사위도 큰사위 못지않게 튼튼하고 건강했다. 남편이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그녀는 사위를 고를 때 튼튼하고, 건강한 사위만을 골랐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 주기만을 바랐다. 둘째 딸을 무사히 시집보낸 어머니는 기쁨과 허탈 때문에 그만 자리에 몸져누웠다. 하지만 아직도 막내딸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두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집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반반한 것은 모두 두 딸에게 들어가고 몇 마지기 되던 논도 거의 팔아 버렸다.
먹고사는 것은 단 두 식구라 그런 대로 되겠지만, 막내딸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할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이제 힘이 없었다. 막상 몸져눕자 막내딸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막내딸이 밭일 논일을 해야 했다.
마음씨 착한 막내딸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몸져누운 어머니를 봉양하고 열심히 일을 했다. 마침내 막내딸도 시집을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몸져누운 채 막내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먼저 시집간 두 언니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다.
막내딸이 시집을 가던 날, 그녀는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집 앞 언덕까지 올라갔다. 마음 착한 막내딸은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막내가 떠나간 지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시집간 딸들이 보고 싶었다.
그녀는 먼저 큰 딸네 집으로 갔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큰딸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큰 딸의 태도는 달라졌다. 어머니가 아주 자기 집에 살러 온 줄 알았던 것이다. 쌀쌀 맞게 대하는 큰 딸을 보자 어머니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딸의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작은딸의 집으로 떠났다. 작은딸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니고 보름이 지나자 큰딸과 마찬가지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또다시 봇짐을 머리에 이고 막내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두 딸에게 괄시를 받은 그녀는 막내딸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둘째 딸의 집에서 나왔다. 이미 엄동설한이라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온종일을 걸어서 언덕에 오르니 저만큼 막내딸이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이제는 노쇠한 몸이라 종일 걸었더니 숨이 찼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래도 막내딸을 빨리 보고 싶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막내딸의 집이 바라보이자 그녀는 딸의 이름을 불렀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막내딸을 애타게 부르다 그녀는 너무나 숨이 차서 고개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어머니가 자기 집으로 오다가 쓰러져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는 막내딸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그 고개 마루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 이듬해 봄 막내딸이 무덤을 다시 찾았을 때, 무덤에서 돋아난 외로운 꽃이 한 송이가 있었다. 그 꽃은 막내딸의 집을 향해 허리를 굽힌 채 배려다 보고 있었다. 그 이 후 그 꽃은 딸의 집을 찾아가다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라 하여 할미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도 한다. 자라고 나면 절로 자란 것으로 알고 부모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그것이 인륜이고,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라고는 해도 부모의 노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내리사랑만큼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지만, 치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준다. 그저 내리사랑으로 나약하게 자녀를 만들게 하기 보다는 치사랑을 가르쳐서 사랑의 교환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은 사랑을 아름답게 만든다.* -최복현-
그러니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다운 사람이다.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아래를 향한 사랑이 부모를 부모답게 만들고, 위를 향한 사랑이 자식을 자식답게 만들고, 제자답게 만들며, 진정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다.
옛날에 세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 없이 세 딸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혼자 딸들을 키우는 그녀에게는 딸들이 잘 자라주는 것이 단 하나의 기쁨이었다. 어느덧, 딸들은 시집을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먼저 큰딸에게 신랑을 정해 주었다. 키도 크고 건강한 남자였다. 잔칫날 어머니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해서 큰딸은 건넛마을로 시집을 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둘째 딸도 남부럽지 않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둘째 딸이 시집가서 흠 잡히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일을 해서 시집 밑천을 마련했던 것이다. 마침내 둘째 딸도 시집을 가게 되었고, 둘째 사위도 큰사위 못지않게 튼튼하고 건강했다. 남편이 너무 허약했기 때문에 그녀는 사위를 고를 때 튼튼하고, 건강한 사위만을 골랐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 주기만을 바랐다. 둘째 딸을 무사히 시집보낸 어머니는 기쁨과 허탈 때문에 그만 자리에 몸져누웠다. 하지만 아직도 막내딸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두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집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반반한 것은 모두 두 딸에게 들어가고 몇 마지기 되던 논도 거의 팔아 버렸다.
먹고사는 것은 단 두 식구라 그런 대로 되겠지만, 막내딸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할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이제 힘이 없었다. 막상 몸져눕자 막내딸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막내딸이 밭일 논일을 해야 했다.
마음씨 착한 막내딸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몸져누운 어머니를 봉양하고 열심히 일을 했다. 마침내 막내딸도 시집을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몸져누운 채 막내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먼저 시집간 두 언니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다.
막내딸이 시집을 가던 날, 그녀는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집 앞 언덕까지 올라갔다. 마음 착한 막내딸은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막내가 떠나간 지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시집간 딸들이 보고 싶었다.
그녀는 먼저 큰 딸네 집으로 갔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큰딸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큰 딸의 태도는 달라졌다. 어머니가 아주 자기 집에 살러 온 줄 알았던 것이다. 쌀쌀 맞게 대하는 큰 딸을 보자 어머니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딸의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작은딸의 집으로 떠났다. 작은딸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니고 보름이 지나자 큰딸과 마찬가지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또다시 봇짐을 머리에 이고 막내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두 딸에게 괄시를 받은 그녀는 막내딸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둘째 딸의 집에서 나왔다. 이미 엄동설한이라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온종일을 걸어서 언덕에 오르니 저만큼 막내딸이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이제는 노쇠한 몸이라 종일 걸었더니 숨이 찼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래도 막내딸을 빨리 보고 싶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막내딸의 집이 바라보이자 그녀는 딸의 이름을 불렀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막내딸을 애타게 부르다 그녀는 너무나 숨이 차서 고개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어머니가 자기 집으로 오다가 쓰러져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는 막내딸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그 고개 마루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 이듬해 봄 막내딸이 무덤을 다시 찾았을 때, 무덤에서 돋아난 외로운 꽃이 한 송이가 있었다. 그 꽃은 막내딸의 집을 향해 허리를 굽힌 채 배려다 보고 있었다. 그 이 후 그 꽃은 딸의 집을 찾아가다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라 하여 할미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도 한다. 자라고 나면 절로 자란 것으로 알고 부모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그것이 인륜이고,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라고는 해도 부모의 노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내리사랑만큼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지만, 치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준다. 그저 내리사랑으로 나약하게 자녀를 만들게 하기 보다는 치사랑을 가르쳐서 사랑의 교환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은 사랑을 아름답게 만든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