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12회 - " 어린왕자 : <어린왕자>의 주 무대가 사막인 이유는 뭘까요? "

영광도서 0 1,591
생텍쥐페리, 그는 유독 사막에 대한 글에 애착이 많았습니다. 사막이란 그 어느 공간보다도 진한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교차가 커서 밤이면 하늘에 쏟아부은 듯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로 한 없이 아름답지만 한기가 느껴지는 곳, 낮이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싸움을 해야 하는 곳, 그 곳은 생텍쥐페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어떤 인연이 있기에 <어린왕자> 속에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요?



생텍쥐페리는 사막에서 현자 여우를 만났고, 반면 격심한 고독을 만났으며, 죽음의 고비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막에서 수많은 신기루를 만났고, 생명의 은인도 만났습니다. 사막, 그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을 하게한 그 사막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거의 한시도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공간입니다. 그는 그런 공허한 공간 안에 그의 작품의 집을 지어 채워갔던 셈입니다.



그가 만난 사막은 사실 불행한 사막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사이공까자의 최고 비행기록을 당시엔 앙드레 자피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47시간의 비행기록입니다. 그 기록을 깨는 사람에게 15000 프랑의 상금이 걸려 있었고, 그 기한은 1936년 1월 1일 까지였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상금에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기 기록을 깨고 싶었습니다. 해서 동료인 기관사 프레보와 함께 비행기록에 도전했습니다.



드디어 1935년 1월 29일 일요일 아침 7시 7분 프레보와 함께 평소에 아끼던 비행기 시몽을 타고 부르제 공항에서 이륙합니다. 비행은 순조롭습니다. 그렇게 22시 30분에 벵가지를 지나 사이공을 향해 순조로운 비행을 하나 싶었는데 낯선 구름을 만납니다. 그 안에서 어렵게 싸움을 벌이다 아주 아름다운 불빛을 만납니다. 아마도 등대인 듯 합니다. 나일강 쯤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착륙을 시도하려는데, 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기루였습니다. 그만 비행기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륙한 지 4시간 15분 그의 도전은 끝나고 그 대신 죽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다행히 살아남아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리비아사막이었습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남으로 가든, 북으로 가든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사막, 어디로 가든 300키로미터 이상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사막에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그 사막에서 생존의 싸움을 벌여야 했고, 그 사막에서 오아시스 대신 신기루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사막에서의 생사를 넘나들던 그 아픈 기억과 고독의 기억이 <어린왕자>를 쓰게 했습니다. 사막에서 살아남은 지 6년 후인 1941년 그는 <어린왕자> 집필에 들어갑니다. 그에게 그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쓰게한 사막은 그에게 결코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많은 사색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죽음 앞에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 열사의 사막에 노출되어 있으면, 19시간 만에 온몸에 수분이 모두 증발하여 명태처럼 죽고 만다는 사막, 그 끔찍한 사막에서 꼬박 사흘을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어린왕자>라는 멋진 작품을 심어 놓았지만 참 아픈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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