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31회 - " 억지로 멈출 수 없는 시 "

영광도서 0 1,114
어제는 모처럼 쉬는 날이었습니다. 할 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 집에서 종일 일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창 밖을 보니 하늘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비온 뒤라 더 맑습니다. 갈등을 합니다. 그리고 결정합니다. 그래 지금 즐거운 일을 하자,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부터 하자.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섭니다. 북한산에 오르기로 합니다. 참 잘했습니다. 북한산에 오르기를 참 잘했습니다. 단풍이 절정이었습니다. 눈이 즐거웠습니다. 덩달아 마음도 즐거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가끔은 바쁜 일이라도 내려놓고 즐거운 일을 찾아 일단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은 잡히는 게 아니라 제 멋대로 흘러가고 마는 것이니까요.

시간은 흘러가고 마는 것이지만, 그 시간을 멈추게 하겠다고 애쓴 어리석은 신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1대 신으로 등장하는 우라노스 신입니다. 태초의 신 카오스에서 나온 가이아라는 대지의 여신은 자위행위를 하여 자신만큼 큰 우라노스라는 하늘의 신을 낳습니다. 그리고 두 신은 결합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남신 6명, 여신 6명 도합 12남매를 낳습니다. 그렇게 12신을 낳았지만 그 신들은 바깥 구경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 신 우라노스가 그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우라노스는 그 신들을 깊고 깊은 가이아의 자궁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고도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결합은 이어집니다. 해서 괴상하면서도 거대한 신들이 이번에는 세 쌍둥이로 태어납니다. 헤카톤케레이스 3형제로 천둥, 번개, 벼락의 신입니다. 그러고도 또 결합하여 이번에는 이마에 눈 하나만 박힌 거대한 세 쌍둥이를 낳습니다. 키클롭스 삼 형제군요. 도합 이제는 18명이나 되었음에도 이들은 모두 모신 가이아의 자궁 속에서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라노스는 이들이 밖으로 나와 세상 맛을 보고 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가두어 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들을 맡아 둔 가이아로부터 발생합니다. 아이들을 생산했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도 안에만 있게 하는 남편의 처세가 영 불만이었습니다. 억지로 이들의 성장을 막으려 는 남편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야 품의 자식이지만 성인이 되어도 억지로 아이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남편은 말을 들어 먹지 않지요. 해서 가이아는 비장의 무기를 만듭니다. 스키테라고 하는 청동 낫입니다. 그 비장의 무기로 반란을 꿈꿉니다.

자식들을 남편 몰래 불러 모은 가이아는 자신의 의도를 밝힙니다. 그러자 그 중에서 가장 사악한 막내아들 크로노스가 자기가 아버지를 내치는 일에 앞장 서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기, 둘째는 아버지는 자신보다 강하니까 급소를 노리기뿐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크로노스는 침실에 숨어 아버지가 어머니와 걀합하러 오기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잔뜩 흥분하여 어머니를 덮치려 합니다. 때를 제대로 잡은 그가 아버지의 급소를 스키테로 자릅니다. 그리곤 그것을 뒤에 바다로 던져 버립니다. 비명을 지르며 우라노스는 "티탄!"이라고 저주합니다. 불한당 같은 놈들이라는 뜻입니다. 생산력을 잃은 그는 아들을 저주하며 하늘로 사라집니다. 그렇게 우라노스의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시간은 흘러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됩니다. 그 흐름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라노스는 그 흐름을 억지로 흐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아이는 가이의 자궁속에서 자신을 대적할 만큼 성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은 막아도 흐르게 되어 있고, 존재는 그 시간이란 바람에 실려 생장과 소멸을 하게 마련입니다. 시간의 순리를 무시하다 당한 우라노스의 예처럼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에겐 둑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은 고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아끼려 한들 저출하려 한들 소용없습니다. 흘러가는 그 흐름에 올라타고 그 시간을 즐겨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시간에 즐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고민하는 시간으로, 갈등하는 시간으로 그 시간들을 좀 먹고 맙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릅니다. 그 흐름을 어느 누구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력으로도, 지식으로도 그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 시간의 흐름은 명예의 색, 지식의 색, 권력의 색, 부의 색, 그 모든 것들의 색을 바래게 하고 낡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을 제대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 흐름에 맞춰 그 시간을 자기 것으로 삼아 써야 합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지금 누리고 싶은 것 지금 누리세요. 시간은 절약이 안 됩니다. 그리고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 하지 마세요.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 마세요.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마세요. 반성이란 잘못한 것을 돌아보고 그 대신에 그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혜로운 일입니다. 반면 후회는 지난일을 아쉬워하는 아주 비생산적인 것입니다. 후회는 우울을 낳고 심하면 절망을 낳습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로 삶의 열정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래요.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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