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34회 - " 생생한 과거를 재생하는 시간 "

영광도서 0 1,142
생물은 시간과 함께 존재합니다. 시간을 먹고 시간을 배설하며 삽니다. 시간을 먹지 않고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생명체인 우리 역시 시간의 지배를 받고 공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흘려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그 시간들은 흔적 없이 사라잡니다. 과거란 시간의 실체는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의 흐름은 존재의 변화로 짐작할 수 있거나 여전히 남아 있는 공간을 통해 그 시간들을 더듬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흔적 없이 사라진 그 시간들을 우리는 과거라고 부릅니다. 그 과거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으니, 기억을 잃으면 과거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요? 때로 우리는 공간의 도움을 받아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흔적을 남길 수 없지만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그렇게 남아 잃어버린 기억을 재생시켜 줍니다. 기억의 문을 열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합니다. 때문에 우리 삶의 이야기들은 공간의 도움을 받아 재생됩니다. 그렇게 재생된 기억들을 추억이라 부릅니다. 때라서 추억은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이들에게 과거를 재생시켜 보여줍니다. 따라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기억을 기억의 창고에 쌓아둘 수 있습니다. 그 기억 중에서 인상에 각인된 게 바로 추억입니다. 때문에 추억의 장소에 가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를 문득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 바로 모모는 그곳에 삽니다. 모모는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 이아는 원형극장에 삽니다. 폐허가 된 원형극장입니다. 지붕도 없습니다. 수천 년 전에 지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수천 년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간을 재생시키는 장소입니다. 모모는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혼자 있으면 그는 상상합니다. 그곳의 모습, 구석구석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을 보면서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머리에 그릴 수 있습니다. 그곳은 원형극장이기 때문입니다.

원형극장은 기억의 저장소이며, 추억의 저장소이며, 역사의 저장소입니다.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때로는 우스운 이야기를 이 장소에서 연출했습니다. 그 연극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웃고 울었습니다. 그런 사연들이 여기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은 과거가 현재 속에 살고 있는 장소입니다. 삶보다, 평범한 삶보다 훨씬 극적이고 실감나는 연극, 일상보다 더 실감이 나는 연극, 수천 년 전의 그 모습들을 가만히 상상하면 현실처럼 생생하게 그 광경들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그곳에서 생활하는 모모는 외롭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맘껏 시간을 즐기며. 그곳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물론 아무나 그 과거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 상상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모모가 바로 그 공간의 주인입니다. 모모는 자신의 나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확하게 자기 나이도 모릅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초조해 하지도 않습니다. 모모는 마음껏 여유를 즐깁니다. 모모는 그 여유로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공간에서 상상으로 많은 시간을 끌어다 즐깁니다. 모모에겐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요. 모모는 시간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초조해 하지 않습니다. 모모는 바로 과거를 재생하는 심리적인 시간의 주인입니다. 심리적인 시간을 즐기는 사람만이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시계를 풀어놓고 시계 없는 곳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잊고 있던 과거도 분명 우리 자신의 것이니까요. 가끔은 추억도 먹으며 살아볼 일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