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57회 - " 정말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면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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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3:41
시간은 절약할 수도, 낭비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 시간은 절약 대상이기도 하고 낭비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순이 통하는 것이 시간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빨리 달려도 시간은 흐릅니다. 이 흐름의 시간을 절약해도, 낭비해도 삶의 의미와는 관계 없습니다. 삶에 의미를 준다면, 단지 의미부여를 한 시간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물리적으로, 외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가슴 속에 깃들이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간에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시간에 속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효율적이란 이유로, 경제적이란 이유로 마리를 짜낼 대로 다 짜냅니다.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을 단순화합니다. 기계화합니다. 이를테면 무엇을 사용하든 한 가지로만 사용합니다. 가전도구도, 장난감도, 그 무엇도 모두 리모콘 하나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시간을 얻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 리모콘을 누르는 일에 모든 시간을 씁니다. 오히려 그 리모콘 눌러댈 시간이 이전에 수고하던 시간보다 더 필요로 한다는 걸 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간편화합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하나면 문자, 카톡, 컴퓨터 기능, 인터넷, 게임, 대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전에는 이 모두를 하려면 여러 가지 도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더러는 움직여야 했고, 더러는 거리를 제법 걸어야 했습니다. 그 모두를 한 곳에 모으니 아주 편리합니다. 이동 시간도 필요 없고, 다른 도구를 찾아올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엄청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더 바쁠까요? 할 일은 점점 왜 밀릴까요? 그렇다고 의미 있는 일만 골라서 할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런 후회나 아쉬움이 없냐고요?
더 효율적인 사람들, 더 생산적인 사람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이 현대인들이 더 바쁩니다. 더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편리하기 위해, 시간절약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구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편리를 위해, 시간 절약을 위해 만든 스마트폰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 바쁘게 햔대인들은 스마트폰에 달려듭니다. 길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겨우 잠에 들고 나서야 스마트폰에서 떨어집니다. 그러니 더 더욱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도 이들은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시간을 그렇게 낭비했음을 인식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의미 없이, 보람 없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멋지고 훌륭한 시간절약 도구에 오히려 시간을 도둑 맞고 있습니다. 건강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쁠 대로 바빠지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해 합니다.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습니다. 의미 없이 생각 없이 세상을 삽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잃고 기계로 변신합니다.
기계만 들여다보다가 기게처럼 변한 그들은 기계 속에 갇힙니다. 그 속은 더 넓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허울뿐입니다. 영혼 없는 소통, 마음 없는 소통입니다. 때문에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더 먼 사람들, 더 폭넓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대신 정작 가까운 이들, 옆에 있는 이들과는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이들과 소통이 안 되는 이유조차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과 눈과 눈을 맞추며 대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엉뚱한 화풀이로 대신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시대, 온갖 물질문명을 맹신하면서 소통을 이야기하니 잘 될 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세상은 온통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불통인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실을 잊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서로 호흡을 느끼고, 입김을 느끼고, 서로의 목소리를 느끼고, 시선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신체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생기들의 따뜻함을, 아니면 냉기라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소통이 살아납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랫사람과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윗사람이 소로 마주보며 소통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 잘난 물질문명의 도구에만 의지하니까 소통이 제대로 안됩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돌아가는 건 서로 체온을 느끼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기분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시간의 효율, 시간의 경제성을 이유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기계이기를, 도구이기를 원하니까 문제입니다. 소통을 원하는 리더들에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 말하고 싶은 연말의 아침입니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효율적이란 이유로, 경제적이란 이유로 마리를 짜낼 대로 다 짜냅니다.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을 단순화합니다. 기계화합니다. 이를테면 무엇을 사용하든 한 가지로만 사용합니다. 가전도구도, 장난감도, 그 무엇도 모두 리모콘 하나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시간을 얻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 리모콘을 누르는 일에 모든 시간을 씁니다. 오히려 그 리모콘 눌러댈 시간이 이전에 수고하던 시간보다 더 필요로 한다는 걸 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간편화합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하나면 문자, 카톡, 컴퓨터 기능, 인터넷, 게임, 대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전에는 이 모두를 하려면 여러 가지 도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더러는 움직여야 했고, 더러는 거리를 제법 걸어야 했습니다. 그 모두를 한 곳에 모으니 아주 편리합니다. 이동 시간도 필요 없고, 다른 도구를 찾아올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엄청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더 바쁠까요? 할 일은 점점 왜 밀릴까요? 그렇다고 의미 있는 일만 골라서 할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런 후회나 아쉬움이 없냐고요?
더 효율적인 사람들, 더 생산적인 사람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이 현대인들이 더 바쁩니다. 더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편리하기 위해, 시간절약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구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편리를 위해, 시간 절약을 위해 만든 스마트폰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 바쁘게 햔대인들은 스마트폰에 달려듭니다. 길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겨우 잠에 들고 나서야 스마트폰에서 떨어집니다. 그러니 더 더욱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도 이들은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시간을 그렇게 낭비했음을 인식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의미 없이, 보람 없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멋지고 훌륭한 시간절약 도구에 오히려 시간을 도둑 맞고 있습니다. 건강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쁠 대로 바빠지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해 합니다.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습니다. 의미 없이 생각 없이 세상을 삽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잃고 기계로 변신합니다.
기계만 들여다보다가 기게처럼 변한 그들은 기계 속에 갇힙니다. 그 속은 더 넓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허울뿐입니다. 영혼 없는 소통, 마음 없는 소통입니다. 때문에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더 먼 사람들, 더 폭넓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대신 정작 가까운 이들, 옆에 있는 이들과는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이들과 소통이 안 되는 이유조차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과 눈과 눈을 맞추며 대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소통이 안 되는 이유를 엉뚱한 화풀이로 대신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시대, 온갖 물질문명을 맹신하면서 소통을 이야기하니 잘 될 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세상은 온통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불통인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실을 잊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서로 호흡을 느끼고, 입김을 느끼고, 서로의 목소리를 느끼고, 시선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신체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생기들의 따뜻함을, 아니면 냉기라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소통이 살아납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아랫사람과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윗사람이 소로 마주보며 소통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 잘난 물질문명의 도구에만 의지하니까 소통이 제대로 안됩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돌아가는 건 서로 체온을 느끼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기분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시간의 효율, 시간의 경제성을 이유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기계이기를, 도구이기를 원하니까 문제입니다. 소통을 원하는 리더들에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 말하고 싶은 연말의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