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68회 - " 꽃이 제 색깔을 정성스럽게 고르듯이 "

영광도서 0 1,296
지난해에 꽃이 피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색깔도 어쩌면 그리 고운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세상의 어느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색깔이었습니다. 꽃잎 하나 하나도 어쩌면 그리도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뿐인가요, 그 꽃에서 몽글몽글 은근히 풍겨나오는 향기는 어떠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꽃이 핍니다. 지난해의 꽃이나 지금 피는 꽃이나 같은 꽃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다릅니다. 이번 꽃의 색깔이 지난해의 꽃보다 모양은 더 정교하고, 색깔은 더 다채롭습니다. 향기 또한 더 매혹적입니다. 바라보면 볼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꽃은 더 신비스럽고 신묘합니다.

그렇습니다. 꽃은 거기서 거기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은 다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늘 같은 반복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세히 느끼면 확연히 다릅니다. 시간은 늘 우리를 변하게 만드는데 우리는 느끼지 못합니다. 아주 미세하게 우리를 속이고 있지만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속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속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나일 뿐이라고 자신을 속입니다. 실제로는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님에도 그저 늘 같은 나로 생각합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까요. 오늘 피는 그 아름다운 꽃이 시듭니다. 시들더니 떨어집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그토록 형언할 수 없는 향기를 자랑하던 꽃이 시들어 떨어집니다. 그 떨어진 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못 저 깊은 곳으로 한 잎 한 잎 가라앉습니다. 꽃이 사라졌습니다. 꽃이 없는 나무입니다. 나무와 줄기는 그대로 있는데 더는 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나무는 꽃나무란 이림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리곤 그 나무의 변화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데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변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감지하지 못할 뿐 조금씩 변합니다. 내 몸속에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우리는 느끼지 못합니다. 수많은 세포가 죽는데도 느끼지 못합니다. 수많은 그 무엇이 죽어 사라지고, 새로 탄생하는 신비로운 일들이 몸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겉모습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니까 무관심으로 지나칩니다. 고요히 침묵하다가 어느 순간 땅은 자신을 확뒤집어 지진을 만들어내거나,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으로 폭팔을 일으키듯이, 우리 자신 속에서도 늘 변화를 준비하고 있음에도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느낄 수 없는 변화들을 한참 지내놓고야 저어기 앞에서의 느낌과 한참 뒤의 느낌을 견줄 때에야 아 내가 그랬었구나를 느낍니다. 그만큼의 변화는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닌데, 아주 조금씩의 변화를 묶어서 느낄 뿐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고요? 뭐 다른 말이 필요하겠어요. 그렇게 진행되는 필연을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인정하면서 나를 챙기고 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미련을 버리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필연은 피할 수 없으니 그 필연과 친해지자는 것이지요.

꽃봉오리가 살짝 문을 엽니다. 그리고는 아름답게 곱게 피어납니다. 그러고는 이내 지기 시작합니다.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듬해 그 자리에 다른 꽃이 핍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순환의 과정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우리 또한 그 자연의 순리에 역행할 수 없습니다. 어제의 꽃이 오늘의 꽃이 아니듯이, 우리 자신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지난해의 꽃은 더더욱 오늘의 꽃이 아님이 확실하듯, 우리도 이러한 순환의 일부입니다. 그저 상황에 맞는 언어와, 상황에 맞는 몸짓으로 살자고요.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꿈으로, 활짝 핀 고운 현실로, 잎을 떨구는 꽃처럼 성숙한 연륜으로 삶을 곱게 색칠하며 살자고요. 꽃이 잠깐 피기 위해 정성스럽게 제 색깔을 고르듯이, 고운 몸매를 만들듯이 우리 또한 정성스럽게 잘 다듬으며 고름 살자고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즐거운 순간, 기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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