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71회 - " 내가 그리는 시간의 그림 "

영광도서 0 1,569
"모모, 네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아니야. 너 자신의 시간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네가 막 다녀온 장소와 같은 곳이 있단다. 허나 그곳에는 내가 데리고 가는 사람만이 갈 수 있어. 게다가 보통 눈으로는 그곳을 볼 수 없지."

"그럼 제가 갔던 곳은 어디에요?"

"네 마음 속이란다."

때론 나를 즐겁게 하는 시간, 나에게 환희를 주는 시간,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시간, 시간은 어디에서 오나요? 보이지 않는데 누구나 시간을 말합니다. 누구나 시간을 알고 있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시간, 그 시간에 우리는 때로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 시간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우리 나름의 시간의 틀을 만들고 그 시간의 명령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누구나 그 시간에 복종합니다. 이를테면 축구경기를 합니다. 우리 팀이 1:0으로 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재는 도구로 시간을 잽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우리가 이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지 없이 그대로 끝납니다. 그러면 그 시간 앞에 복종하고 물러섭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때로 나를 슬프게 하는 시간, 상처를 주는 시간, 늙는다는 것을 서럽게 만드는 이 시간, 생각할수록 초조하게 만드는 이 시간, 이 시간은 어디에 있나요? 한없이 자비를 베푸는 듯 넉넉한 여유를 주다가, 때로는 가차없이 거두어 가는 가혹한 이 시간, 이 시간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느끼려하면 느낄 수도 없는 이 시간, 단지 느낄 수 있다면, 볼 수 있다면, 시계로만 알 수 있는 이 시간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초침을 보며, 재깍거리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시간의 흐름 앞에 흘러가는 시간들이 때로 아깝습니다. 모래시계 속에서 아래로 아래로 새어 내려가는 모래알들을 보며 내 모래알들이 새어나가는 듯하여 초조합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보여주지 않으면서 시계 속에서, 달력 속에서 존재들을 좀먹어 가듯 서서히 침범하는 시간의 정체, 존재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 어디든 스스로 존재하는 시간, 그것은 마치 신을 닮았습니다. 볼 수 없으니, 만질 수 있으니, 잡을 수 없으니 그럼에도 있는 것은 분명하니 배척할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으니, 시간이란 놈은 꼭 신을 닮았습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은 아주 가혹한 신을 닮았습니다. 인간에게 시계를 만들게 하고, 달력을 만들게 하고는 여지 없이 제 맘대로 우리의 생사를, 우리의 생장소멸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요.

이 시간, 신을 닮은 이 이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제일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초침,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기어가는 분침, 가는 듯 아니 가는 듯 지나친 게으름을 피우며 흘러가는 시침,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틀 안에서 여전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정해진 틀 속에서 돌아가는 시계바늘들 속에서 우리는 바람 같은 시간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없는 바람을 닮은 시간이 시계 속에서 제 존재를 보여주려 합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며, 커다란 건물을 흔들어대며 제 존재를 보여주듯이 시간도 시계속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이 시간,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고 어디에 있나요? 만물이 변화한다고 그게 시간 때문이랄 수도 없는데, 우리는 시간을 정합니다. 볼 수는 없지만 믿으면 우리 마음에 임재하는 신처럼, 그 신을 닮은 시간, 그 시간이 있다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 모습 또한 각자가 그리는 그림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는 행복한 시간을 그립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가혹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스스로 그리며 살면 됩니다. 기왕이면 행복한 그림으로, 즐거은 그림으로, 아름다운 삶의 무늬로 시간의 그림을 그리며 살자고요. 시간은, 진정한 자기만의 시간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내 마음대로 그 시간을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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