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75회 - " 딱 한 번만 흐르는 시간 "

영광도서 0 1,302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 나 역시 다시는 깨어날 수 없어. 그럼 이 세상이 영원히 얼어 붙은 듯 정지되어 버릴 게다. 헌데 네게는 너에게만, 딱 한 사람에게만 시간의 꽃을 줄 힘은 있단다. 물론 한 송이밖에 줄 수 없지. 언제나 한 송이만 피어나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시간이 전부 멈추어도 넌 한 시간을 갖게 되는 거야."
-미하엘 엔데의 <모모> 중에서-

내 인생은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내 인생은 나의 것이죠. 노래 가사가 그렇기도 하고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지만, 실상 나는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니까요. 또한 내 인생이 나의 것이라면, 당연히 내게 주어진 시간, 당연히 나의 시간입니다. 내 인생이 나의 것이라지만 그 또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나의 시간 역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요. 내 것이면서 내 마음대로 못하는 모순, 우리는 모두 그 모순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왜 우리는 내 인생이면서도 내 마음대로 못 살고, 내 시간이면서도 내 마음대로 못 쓸까요? 우리는 시간의 지배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지배를 함께 받기 때문입니다. 존재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공간과 시간과 연결된 나, 이렇게 삼일치가 존재의 조건입니다. 이를테면 실존입니다. 고로 실존이란 지금이란 시간, 여기라는 공간, 존재라는 나가 공시성, 동시성, 공지성을 함께 갖는 것을 일컫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우리는 현재라 하고, 그 현재 안에 있는 나가 바로 실존입니다. 따라서 실존은 곧 현재를 중심으로 사는 일입니다.

내게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그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나의 시간을 나는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으며,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누리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시간은 각자에게 주어진다 해도, 공간은 더불어 함께 써야 하는,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유한한 시간, 유한한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때로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리를 구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각자만의 시간입니다. 각자에게 시간의 꽃은 한 송이밖에 주어지지 않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의 삶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저 내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사람만의 시간입니다. 내 시간 역시 그 사람에겐 그가 전체를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시간, 각자 다른 시간으로 살아갑니다. 그 시간의 시작과 끝은 모두 다릅니다. 그렇게 주어진 자기만의 시간, 비록 공동체로 살아가느라,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는 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합니다.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고 나면,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대신하듯이, 우리 삶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른 이름을 따라 삽니다. 이를테면 아기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이름을 바꾸며 살다 떠납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름도 모습도 변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달라진 행렬은 결국 나라는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딱 한 번 흘러갑니다. 그런 나의 시간만 나에게 유효합니다. 그 시간이 다하면 다른 시간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은 나에게 없습니다.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나의 시간 안에서만 나는 남의 시간을 바라봅니다. 나의 시간 안에서먼 세상이 있고, 사람이 있고, 모든 것이 있습니다. 나만의 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 그 시간을 다시 생각해 보는 이 아침이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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