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77회 - " 삶의 무늬를 수놓는 시간 "

영광도서 0 1,260
세상이 변하기를 바랐습니다.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기를, 눈물 없는 세상으로 변하기를, 설움 없는 세상으로 변하기를, 바라고 바랐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변화를 외쳐서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인류가 생겨난 이후 늘 같은 반복이었을 겁니다. 다양한 혁명이 일어나고,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그건 잠시였습니다. 이내 다시 사람들의 이기심이 뱔동합니다. 저 잘난 멋에 남을 마구 깎아내립니다. 앞으로 변하긴 할까요? 얼마나 더 속으면 변할까요? 어쩌면 비관적입니다. 그 물에 그 물일 거라고 생각하면 비관적이라 할 테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변화, 그건 혁명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그 환상을 너무 믿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생각을 바꿉니다. 세상이 바뀌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말입니다. 날씨가 우중충하다고 모두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춥다고 마음마저 춥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괴로운 일도, 많이 아플 것 같은 일도 그걸 아파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의 눈이 세상을 바꿉니다.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곱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합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시각이 세상을 바꿉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잡초를 떠올렸습니다. 아무런 이름을 갖지 못한 잡초 말이지요. 그놈들은 참 용케도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도,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은 너무 세상에 민감할 게 아니라 잡초처럼 제 삶을 끈질기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끈질긴 삶을 살아내면서 때로 이름은 없어도 예쁜 꽃을 피워내기도 하는 잡초의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그 누구의 보살핌은커녕 때로 짓이겨지면서도 잘 살아내는 잡초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잡초/ 최복현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잡초는

누가 이름 하나 주지 않아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때로 밟히고 찢기고 바닥에 눕혀져도

애써 일어나 제자리를 찾는다

아파도 힘들어도 견뎌내며 찢겨진 상처를

그저 자기만의 삶의 무늬로 만들며 산다.


돌아보면 과거란 때로 온갖 삶의 부대낌에서 얻은 상처들뿐입니다. 그걸 상처로 받아들이면 상처지만, 그걸 현재의 약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약입니다. 감사와 원망은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아픔을, 상처를 삶의 무늬로 만들기, 그건 바로 나의 과거를 나의 자산으로 삼는 일입니다. 아린 상처들을 잘 보듬어 나의 글 속으로, 나의 경험담 속으로 초대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상처들을 삶의 무늬로 바꾸는 일입니다.

분노를 분노라 부르지 않고, 아픔을 아픔이라 부르지 않고, 내 안에 쌓인 그 얼룩들을 삶의 무늬로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은 변해 있습니다. 어떻게든 우리 인간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늘 미워만하면서, 늘 시기만 하면서, 늘 분노로 이죽거리면서 세상을 살기엔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 짧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지난 일들을 나의 자산으로 삼으면서, 나를 사람답게 키워준 그 아픔들을 감사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요?

그래요. 잡초라면 어때요. 이름 따위 없으면 어때요. 내가 내 삶을 보듬으며, 내 삶을 위로하며, 내 삶을 사랑하며 살자고요. 그 삶에는 아름다운 삶의 무늬들이 곱게 수놓아질 거에요. 내가 살아온 날들의 기억들을 내 자산으로 삼아 내 삶의 무늬로 바꾸어 사는 일, 그 삶은 생산적이며, 행복한 일입니다. 내가 내 삶을 응원하는 잡초처럼, 우리들 삶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잡초처럼 당당한 삶을 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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