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제883회 - " 양파를 벗기며 "

영광도서 0 1,171
양파는 선이 참 곱습니다. 아주 동그랗지도 않고, 그렇다고 타원형도 아닌, 둥글둥글하달지 동글동글하달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울 만치 생긴 모양이 묘합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 어디가 시작이든 상관없이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유연한 선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각선미만큼이나 참 곱습니다. 게다가 구릿빛도 어니고 갈색도 아니고 그 중간쯤 되는 묘한 색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시각적으로 이미 맛이 보입니다. 참 맛이 있을 듯 싶습니다. 선이 곱고 결이 곱고 색이 고와서 벌써 맛을 느끼게 합니다.

그 맛을 상상하며 한 껍질 벗겨냅니다. 겉으로 보이는 색깔과는 아주 다른 하얀 몸이, 눈이 부시도록 하얀 나신이 부끄러운 듯 드러납니다. 티 하나 없이 곱고 하얀 색, 그 몸에서 촉촉하게 진액이 배어나옵니다. 피부에 맺히는 가늘고 잔땀처럼 송글송글 하얀 땀방울들이 하얀 나신 위에 곱게도 맺힙니다. 다시 보면 그건 속이 아닙니다. 그 안에 또 속이 있습니다. 속이 아닌 껍질을 또 벗겨냅니다. 속인 듯 꼅질인 양파의 속, 그 속껍질을 또 벗겨냅니다. 알싸하게 전해오는 따가운 맛이 코를 때립니다.

코끝을 자극하는 진한 향을 견디며 또 한 꺼풀 벗겨냅니다. 콧물이 나오고, 이어서 눈물이 나옵니다. 알싸한 맛이 매운 맛으로 바뀝니다. 속으로 들어갈수록, 껍질을 하나 하나 벗겨낼수록 점점 더 하얀 색,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당당하게 몸을 드러냅니다. 뿜어대는 향은 더 강렬하게 코를 자극하고 눈마저 자극합니다. 송글송글 솟던 진액은 점점 더 진하게 솟아나옵니다. 속으로 들어갈수록 흰색은 더 희고, 향은 더 강하고, 여전히 벗겨낼 속을 드러냅니다. 끝까지 껍질로 한꺼풀 한꺼풀, 껍질로만 이루어진 양파, 그 속을 끝까지 벗겨내기 참 어렵습니다.

------------------

양파를 벗기며/최복현



잘 어울리는 구릿빛 몸을 따라
우아하게 그려지는
너의 곡선

그 안에 감추어진 너의 향을 느끼려
너를 살며시 벗기면
눈부시도록 하얀 또 하나의
색다른 네 모습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너를 한 꺼풀 더 벗겨내면
눈이 시려 눈물이 난다


그래도 그래도
사뭇 더하는 호기심으로
너의 속내를 더 벗겨내려면
이번엔 콧등마저 시큰해지며


눈물 흐른다


기어코
네 깊은 속 다 들여다보기도 전
네 속내를 다 알기도 전
손을 멈추고 물러나고야 만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으로 이루어진 양파의 속, 벗겨도 벗겨도 껍질인 양파의 속, 그 속을 들여다보니, 마치 사람의 속모양을 닮았습니다. 양파를 끝까지 벗겨내면, 그 모두가 껍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은 모두 희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끝까지 속인 듯, 껍질로 껍질로 이어지는 양파의 모양처럼 사람의 속도 어디가 끝인지,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것이 본심인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양파의 속은 겉껍질만 빼고는 모두 흰색이듯이, 사람의 속도 차라리 양파의 속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그럴 양이면, 그 속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으련만, 사람의 속은 껍질을 벗길 때마다, 아니 그 사람을 알아갈수록 다른 면들이 보입니다.

해서 사람의 속 알기란 참 어렵습니다. 하긴 사람처럼 알기 어려운 존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표정관리를 할 줄 아는 동물, 속내를 감추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줄 알고, 겉과 속이 다르게 표현을 할 줄 아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으니까요. 얼굴은 웃으면서 마음은 울고, 우는 표정을 내보이면서 속으로는 웃을 줄 아는 묘한 동물,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속은 아무리 알려고 해도 끝까지 알기 어렵습니다. 파고 또 파보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어떤 기준점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여 사람 속은 알기 어렵습니다. 아니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 그렇게 알기 어려운 사람의 속,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속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 속을 모두 알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잘 알려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무리 애쓴들 제대로 알 수 없고, 잘 알 수 없으니까요. 알 수 없는 미래라서 그 미래를 더 살고 싶게 하는 것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게 사람 속이라, 그 사람을 더 알아보고 싶고, 더 사겨보고 싶게하는 것일 테지요. 그러니까 그냥 현재의 모습을, 지금의 마음을 그 사람의 마음이려니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그 사람으로 보면 될 일입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든 지금의 관계로, 지금의 마음으로, 그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관계에 충실하면 됩니다. 지금의 그 모습을 그 사람의 진심으로 믿어주고 지금의 그 사람으로 사귐을 나누어야 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