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93회 - " 지금, 나를 제대로 세우는 시간 "
영광도서
0
1,321
2016.12.01 03:42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 일은 모두 좋은 것 같습니다. 현실이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옛날이 그립고, 현실이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옛일이 그립습니다. 현재가 괴로우면 과거의 그 달콤함을 유지하지 못했음이, 지키지 못했음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복계를 한들 마음뿐이지 이미 '과거는 흘러갔다'입니다. 그렇다고 그 과거가 반드시 지금보다 좋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세월이란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아렸던 기억들은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를 재생한다면, 그래서 그 과거가 현재로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 누리는 현재처럼 불만이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 좋은 사람들, 소위 남보기에 행복한 사람들, 그들도 과거를 그리워 합니다. 그들의 삶은 겉과 속이 달라서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즐겁지만, 남들이 보기에 잘 나가지만,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행복하지만, 실제의 자신은 그렇지 못한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보기에 화려한 삶은 남들의 기준에 맞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기준에 맞춘 행복, 달리 말하면 사회의 기준에 맞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성공으로 바쁘니까,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지니까 그게 행복이려니, 진정한 성공이려니 잊고 삽니다. 그러다 그 맥이 끊기고 자신을, 진정한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옵니디. 그때 느끼는 허망함, 그제야 진정한 자신의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마치 시시포스가 신들의 벌을 받아 끝없이 돌을 언덕으로 굴러 올리다가 언덕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괴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때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두려움의 시간, 괴로움의 시간입니다. 제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삶, 남들의 맞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성공적인 삶이려니, 그게 행복한 삶이려니, 우리는 그렇게 삽니다. 그러다 그게 깨어지는 날, 그 장막이 걷우어지고 자신의 진정한 현실을 돌아보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행복한 듯 보이는 사람,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의미 찾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 기준에 맞춘 행복, 자기 기준에 맞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것들과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가끔 자신의 현주소를 찾아봐야 합니다.
진정한 자기만족을 추구해야 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빽빡한 일정, 끝없을 듯 치솟는 인기, 연일 터지는 박수소리, 그것도 한 때입니다. 잊고 살던 자기정체성, 자기 기준에 맞춘 성공 그리고 자기 기준에 맞춘 행복과 사회가 원하는 기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의 그 괴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틀에 갇힌 삶이 아니었던, 보다 마음이 자유로웠던, 페르소나가 덜 두꺼웠던 때를 그리워 합니다. 사람은 자기만족, 지기기준에 맞춘 삶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자기기준에 맞춘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고상한 동물이라고는 해도 우선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어서 종족보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잉여 욕구의 고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아 중의 행운아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행운은 아주 극소수나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럴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존의 문제도 해결할 수는 없냐고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려 애를 써서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그걸 하자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대로 해보는 거지요. 가능합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어도 마음을 바꿔 뼈속까지 그 일을 좋아하게 될 수 있다면, 언제든 난, 미래의 난 늘 행복할 겁니다. 우리는 모두 내일의 아름다운 승자입니다.
지금 좋은 사람들, 소위 남보기에 행복한 사람들, 그들도 과거를 그리워 합니다. 그들의 삶은 겉과 속이 달라서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즐겁지만, 남들이 보기에 잘 나가지만,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행복하지만, 실제의 자신은 그렇지 못한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보기에 화려한 삶은 남들의 기준에 맞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기준에 맞춘 행복, 달리 말하면 사회의 기준에 맞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성공으로 바쁘니까,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지니까 그게 행복이려니, 진정한 성공이려니 잊고 삽니다. 그러다 그 맥이 끊기고 자신을, 진정한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옵니디. 그때 느끼는 허망함, 그제야 진정한 자신의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마치 시시포스가 신들의 벌을 받아 끝없이 돌을 언덕으로 굴러 올리다가 언덕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괴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때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두려움의 시간, 괴로움의 시간입니다. 제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삶, 남들의 맞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성공적인 삶이려니, 그게 행복한 삶이려니, 우리는 그렇게 삽니다. 그러다 그게 깨어지는 날, 그 장막이 걷우어지고 자신의 진정한 현실을 돌아보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행복한 듯 보이는 사람,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의미 찾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 기준에 맞춘 행복, 자기 기준에 맞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것들과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가끔 자신의 현주소를 찾아봐야 합니다.
진정한 자기만족을 추구해야 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빽빡한 일정, 끝없을 듯 치솟는 인기, 연일 터지는 박수소리, 그것도 한 때입니다. 잊고 살던 자기정체성, 자기 기준에 맞춘 성공 그리고 자기 기준에 맞춘 행복과 사회가 원하는 기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의 그 괴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틀에 갇힌 삶이 아니었던, 보다 마음이 자유로웠던, 페르소나가 덜 두꺼웠던 때를 그리워 합니다. 사람은 자기만족, 지기기준에 맞춘 삶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자기기준에 맞춘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고상한 동물이라고는 해도 우선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어서 종족보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잉여 욕구의 고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아 중의 행운아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행운은 아주 극소수나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럴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존의 문제도 해결할 수는 없냐고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려 애를 써서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그걸 하자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대로 해보는 거지요. 가능합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어도 마음을 바꿔 뼈속까지 그 일을 좋아하게 될 수 있다면, 언제든 난, 미래의 난 늘 행복할 겁니다. 우리는 모두 내일의 아름다운 승자입니다.